유난히 글이 안 써지는 날이 있다.
이래저래, 이런저런 이유로 안 써지고,
그래저래, 그런저런 이유로 안 써지고,
요래조래, 요런조런 이유로 안 써진다.
안 써지니 이래저래,
이러하고 저러한 모양으로도 써보고,
안 써지니 그래저래,
그러하고 저러한 모양으로도 써보고,
안 써지니 요래조래,
요러하고 조러한 모양으로도 써보지만,
안 써지는 건 매한가지다.
글이 안 써지면 불안한 마음에 집안을 서성거린다.
이리저리, 일정한 방향이 없이 이쪽저쪽으로,
요리조리, 일정한 방향이 없이 요쪽조쪽으로,
집안을 서성거린다.
그렇게 요리조리 이리저리 집안을 서성이다 보면,
그렇게 맘 착한 우리 와이프도 정신없다며 성질을 낸다.
그렇게 성질을 내고는 미안한지 그럴 거면 방안에 들어가 서성이라 한다.
그러면 나는 풀이 죽어 츄리닝 반바지를 걸치고,
양 발 발가락 사이에 조리를 끼운 채
한 여름밤 집 앞 골목으로 나선다.
이편저편, 이쪽과 저쪽을 아울러,
이쪽저쪽, 이쪽과 저쪽을 또다시 아울러,
노란 가로등 불빛이 밝히는 빈 거리를 서성거린다.
그렇게 아무리 서성여도 글감은 떠오르지 않고,
터벅터벅 걸을 땐 내 발가락 사이를 쪼다가
나긋나긋 걸을 땐 벗겨지려 하는
내 두 발 발가락 사이 조리만 눈에 들어온다.
조리야, 草履야,
너는 왜 내 발에서는 벗겨지려 하면서
왜 일본식 이름은 아직 벗지 못했니.
그러면 노오란 불빛 아래 조리가 조용히 내게 말한다.
내가 네 발가락 사이를 "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