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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l 03. 2022

글쓰기도 20년은 버텨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마다 삶을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경험들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을 버텨 본 경험인데, 군인인 나에게 그런 경험은 군대에서의 시간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군대에서 받던 훈련을 떠올리면 "아, 그때도 버텼는데 이쯤이야"하며 버틸 수 있다.


2022년 3월 28일, 미국 국방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Lloyd J. Austin III)과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의회에 2023년도 국방 예산을 제출했다. 7,730억 달러[1], 오늘자 환율로 계산하면 자그마치 1,004조 원이였으니 "천조국" 별명값은 했다. 하지만 국방 예산이 천조라고 군대 생활이 천국인 건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자원 복무다. 원하는 사람만 군대에 간다. 하지만 애국심에 불타올라 자원을 했든 군인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바라고 자원을 했든지 상관없이, 군인이라면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은 (그게 비록 한 순간 찰나라 할지라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할 때가 온다. (인간이라면 아마 맥아더 장군도 한 번쯤은 그러지 않았을까?)


미국에서 군인들은 복무 10년 차가 될 때쯤 큰 고민에 빠진다. 계속 복무를 할지, 아니면 전역을 하고 사회로 나갈 것인지를 두고 말이다. 미국 군인은 상이군인을 제외하고는 20년을 채우고 은퇴해야 군인 연금을 받고 은퇴 군인 혜택(건강보험, 부대시설 이용 등)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20년의 절반인 복무 10년이 다가오면 '20년까지 버틸 자신은 없으니 하루빨리 사회로 나가자!' 혹은 '어차피 여기까지 버틴 거 20년 채우고 연금이라도 받자!'라는 두 가지 생각으로 내면의 갈등이 생긴다. 어차피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인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20년까지 버틸 자신은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이 고통을 끝내든지, 아니면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거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면서도 가끔 비슷한 고민을 한다.


나는 매일 글을 쓴다. 억지로 글을 써야 하는 학창 시절은 다 지났는데도 말이다 (직장에서 써야 하는 글이 있긴 하지만 이제 그런 글은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경력은 됐다). 순전히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했으니 글쓰기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자원해서 쓰는(쓰고 싶은) 글은 일기처럼 나의 힐링이나 재미를 위한 글만은 아니다. 때론 억지로 버티고 꾸역꾸역 일하는 것처럼 짜내야 써지는 글이다. 나는 그러지 않아도 먹고살만한데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을까?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은 결과물을 내는 것,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책, 내가 자비를 들여 출간하지 않아도 수요에 의해 스스로 출간되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손익분기점은 넘길 수 있는 그런 책을 말이다.


나는 가끔 군인 연금을 위해 복무 20년을 채울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군인처럼 책 출간을 위해 글쓰기를 버틸지 말지를 고민한다. 나는 과연 출간이라는 골을 넣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견뎌냈는데 19년 차에 나가리가 되는 건 아닐까?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만약 여기에 들였던 노력과 시간을 다른 곳에 썼다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든지 N 잡을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되진 않을까?


문득문득 이런 생각과 의문이 들 때면 나는 내가 어떤 글을 쓰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는지 떠올린다. 바로 에세이의 아버지 몽테뉴도 말했던 글을 쓰는 이유, "내가 죽은 후에 나를 추억할 사람들을 위해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그리기 위함"이다. 내가 죽고 나면 나를 추억할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아마 내 동생, 아니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아이들과 손주들 정도 될까?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글을 쓰며 자기 성찰을 하고, 또 전하고 싶은 나의 생각을 온전히 글에 담을 수 있도록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 그것이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였다. 


나는 글 쓰는 행위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비록 글로 돈을 버는 작가는 되지 못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추억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글 정도는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쓰고, 오늘도 글쓰기를 버틴다.



[1] https://www.defense.gov/News/Releases/Release/Article/2980014/the-department-of-defense-releases-the-presidents-fiscal-year-2023-defense-bu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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