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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Jul 22. 2022

그 목사님은 양복을 입지 않았다

미국에 사시는 아흔이 가까운 한국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임종하시기 며칠 전, 병원에서는 의식불명인 할머니의 보호자를 찾았다. 할머니께는 딸이 하나 있었지만 젊으실 때 사별한 후 백인 시댁에서 아이를 데려갔고, 평생 아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행히 할머니의 친구 할머니가 한국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조카 연락처를 알고 있었고, 소식을 들은 중년의 조카는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조카는 막상 비행기 표를 샀지만 미국 초행길이 막막했다. 할머니가 계신 병원은 공항에서 2시간이나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시골이었다. 막막했던 조카는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할머니가 다니시던 한인 교회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받을 수 있었던 도움은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운전해서 오시면 된다고 하는 설명뿐이었다.




할머니가 사시는 동네에는 예순 중반의 한 한국인 아저씨가 계셨다. 아내와 함께 시골의 작은 여관을 운영하는 그 아저씨는 항상 작업복을 입고 여관을 수리하거나 여관 앞 정원을 가꿨다. 그리고 종종 시세보다 한참 낮은 일당을 받고 동네 사람들의 집에 망가진 곳들을 고쳐주거나 새로 지어주기도 했다. 융통성 없이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일을 해버리는 바람에 항상 예정보다 일을 빨리 끝내서 가뜩이나 적은 일당을 더 적게 받아오는 터라 가끔 아내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미국에 입국해 시골 병원을 찾아오기가 막막했던 조카는 친구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했고, 친구 할머니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이 한국 아저씨를 찾았다. 사정을 들은 아저씨는 바로 차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카분이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일정에 동행하며 운전을 해주었다.




바쁜 장례 일정이 끝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친구 할머니는 렌터카를 빌려 타고 와서 호텔에 묵으면 된다는 설명 외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은 교회를 원망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은 격식 차린 장례식을 인도하기 위해 양복을 입고 나타나셨을 때에야 비로소 얼굴을 뵐 수 있었다. 할머니가 생전에 꽤나 오래 다니신 교회였는데 말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조카가 미국에 머무를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한국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은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복 받으실 거라고.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복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고. 성경에 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도와주라는 말이 있다고. 그래서 그런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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