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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ug 02. 2022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선택받은 자만이 내 글을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곳, 광고가 없는 곳, 그리고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특히 에세이스트들이 많은 글장이 커뮤니티, 브런치. 2021년 5월 12일, 『꿈꾸는 책들의 도시』처럼 예비 작가들을 유혹하는 브런치에서 한 번의 실패 후 “브런치” 작가가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적어봅니다.



차례  

실패

성공

브런치 작가가 되고 보니

마치는 글



1. 실패

나는 그들이 애타게 찾는 작가가 아니었다.

몇 달인 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내가 쓰고 싶은 시리즈를 소개하는 에세이 3개를 썼다. 2019년 8월 19일, 브런치 작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신청서에는 이렇게 적었다:


01. 작가소개 – 작가님이 궁금해요. 작가님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앞으로 브런치에서 어떤 활동을 보여주실지 기대할 수 있도록 알려주세요.

시애틀 변두리에 살고 있는, 미국에서 중·고등·대학교를 나오고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한국어가 더 편한 30대 남자입니다. 현재 미국 워싱턴 주 육군 주방위군 중위이면서 비빔밥 집에서 일을 하고, 더 끌리는 곳으로 이직을 준비 중입니다. 10년 동안 비타민, 초콜렛, 그리고 진짜 오렌지로 만든 방향제 장사를 했지만 제가 파는 물건을 아마존이 더 싸게 파는 바람에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언젠가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한국 책을 파는 동네서점을 열고 싶지만 (아마 금방 망할 것 같아) 지금은 다른 일을 하며 미래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02. 브런치 활동 계획 –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으신가요? 브런치에서 발행하고자 하는 글의 주제나 소재, 대략의 목차를 알려주세요.

1. 어른이 되어 읽는 어린이 클래식 – 현재 50권까지 나온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의 서평들. 어린이는 이 책을 왜 좋아할까, 라는 고민과 각 작품에서 어른들만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나눕니다.

2. 평범한 이민자의 일상 에세이 - 미국 이민 19년 차, 1.5세 이민자가 경험하는 미국에서 사는 흥미로움을 이야기합니다.

3. 교회 밖 사람들을 위한 교회 이야기 - 4대째 기독교인, 친할아버지/아버지는 목사님, 현재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다는 신학교에 다니는 교회 핵인싸가 들려주는 교회 밖 사람들을 위한 교회 이야기.


03. 자료첨부 – 내 서랍속에 저장! 이제 꺼내주세요.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둔 글 또는 외부에 작성한 게시글 주소를 첨부해주세요. 선정 검토 시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브런치에서 내가 쓰고 싶은 시리즈를 소개하는 에세이 3개를 골랐다.


04. 마지막 단계! – 활동 중인 SNS나 홈페이지가 있으신가요? 작가님의 주 활동 분야나 직업, 관심사 등을 잘 알 수 있는 주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SNS는 한 개도 없고, 그렇다 할 홈페이지도 없어서 비워뒀다.



2019년 8월 22일, 작가 신청 후 나흘째 브런치에서 이메일이 왔다:

예수는 사흘 만에 죽음에서 살아났지만 내 글은 나흘 만에 사망선고를 받았다.


내가 떨어진 이유는 나에 대한 소개였을까, 나의 계획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글이었을까. 살면서 이런저런 도전을 많이 해봤더라면 한 번의 실패에 그리 낙심하지는 않았을 텐데… 30년 넘게 다른 사람의 검증 없이 ‘내 글은 언젠가 대박이 날 거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브런치의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이메일을 받고 나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찌르는 단어들의 뜻을 찾아보며 실패를 곱씹었다.

안타깝다 – 발음 [안타깝따]
「형용사」뜻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보기에 딱하여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


부득이-하다 – 발음 [부드기하다]
「형용사」마지못하여 할 수 없다.


모시다 – 발음 [모ː시다]
「동사」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를 가까이에서 받들다.


“보기에 딱하여 가슴 아프고 답답하지만 할 수 없네요. 당신의 글을 보아하니 브런치 작가로 존경하여 가까이 두지는 못하겠습니다.”




2. 성공

2021년 5월 11일. 첫 실패 후 2년 뒤 정말 갑자기, 다시 브런치에 작가 신청서를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미주 한국일보 문예공모전에 두 번째로 응모하고 난 후, 첫 번째 떨어질 때나 힘들지 두 번 세 번 떨어지는 건 나중에 글 소재도 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2년 전 첫 번째 작가 신청 실패 후, 그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 함께 내렸던 결론은 브런치에는 실용적인 내용이 먹힐 거라는 것. (당신의 심오한 철학, 고민과 생각은 마음속 문학의 꽃밭 거름으로나 쓰시길…)


그동안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 묵혀 두었던 글 중에 가장 실용적인 아마존 셀링에 관한 글을 두 개 골랐다. 대충 한 번 훑고는 15분도 안 되어 작성한 신청서와 함께 제출했다. 활동 중인 홈페이지가 있냐는 말에 이제 갓 만들어서 About Us와 짧은 글 3개뿐인 블로그 PaulnKate.com를 넣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이렇게나 쉬운 거였다니.


성공한 신청서에는 이렇게 적었다:


01. 작가소개 – 작가님이 궁금해요. 정보 입력 작가님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앞으로 브런치에서 어떤 활동을 보여주실지 기대할 수 있도록 알려주세요.

미국 변두리에 살고 있는, 미국에서 중·고등·대학교를 나오고 영문학을 전공한 이민자입니다. 미육군 장교로 현재는 폴란드에 파병을 떠나와 있습니다. 미국에서 청소부, 치킨집/초밥집/비빔밥집 요리사, 아마존 셀러 등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언젠가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한국 책을 파는 동네서점을 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02. 브런치 활동 계획 –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으신가요? 브런치에서 발행하고자 하는 글의 주제나 소재, 대략의 목차를 알려주세요.

1. 아마존 셀러 이야기 – 소소하게 아마존 셀링에 대한 경험과 요즘 핫한 트렌드 아이템, 마케팅 방법을 나눕니다.

2. 미군 장교가 들려주는 군대 이야기 – 군인이 아닌 사람도 재밌고 유익한 미국 군대, 군대에서 배운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작가 신청 후 그다음 날,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린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3. 브런치 작가가 되고 보니

되고 보니 ‘브런치 작가’라는 말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사람. 딱 그거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사람들이 내 글 발행을 기다리는 것도, 나를 브런치 작가로 만들어준 글이 큰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새로 올라온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는 없나 브런치 공식 계정을 기웃 거리는 (그 당시) 195만 구독자 중 하나일 뿐이다.


단, SNS 초보인 나에겐 내 글을 누군가 ‘라이킷했습니다’라는 알림이 설레긴 했다.




4. 마치는 글

건방지게 겨우 한 번 떨어지고 그다음에 붙어버려 놓고 브런치 작가 신청 실패에 대한 글을 쓰다니. 혹시 한 번 이상 실패한 분이시라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 떨어지고 나서 했던 생각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자꾸 실패를 하시는 이유는 아마 여러분의 글이 너무 심오하기 때문일 거라고.


기억하세요, 브런치의 주 독자는 앱으로 글을 읽습니다. 앱에서 쉽게 읽혀야만 하는 글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작가님들?! 여러분의 고귀한 철학이나 작가정신은 잠시 여러분의 손때 뭍은 노트에 묻어두시고,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희극인처럼, 사람들이 휙휙 핸드폰에서 스크롤하면서 읽을 수 있는 글을 써보세요. 여러분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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