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기다려도 되니까 안부를 물어주시면 안 될까요
보편화할 순 없지만 미국은 때로 일처리가 너무 느긋하다.
마트 계산대에 손님이 줄을 길게 서 있는데 카운터 직원이 너무 여유롭게 손님과 대화를 하며 느릿느릿 계산을 한다.
그럴 땐 속이 터진다. 바쁠 땐 계산에 집중하면 될 텐데 손님의 안부는 어떤지 왜 궁금할까.
엄마를 모시고 미국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 갔다.
가기 전에 미리 예약을 했고, 혹시나 예약 시간에 늦을까 15분 일찍 도착했다.
새로 리모델링한 건물에 입주해 있는 그곳은 예약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무도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유리 카운터 뒤로 직원 두 분이 앉아계셨는데, 빈 대기실에 들어오는 우리를 못 보셨는지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예약시간이 되지 않았기에 대기석에 앉아 예약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입구에 있는 한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기다리는 동안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나는 허둥지둥 신청서를 찾아서 엄마에게 건넸고, 그 찰나 카운터 스피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ㅇㅇㅇ님, 2번 카운터로 오세요."
엄마가 아직 서류 작성이 끝나지 않았다는 몸짓을 보이자 직원은 짜증섞인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냥 들고 카운터로 오세요."
2번 카운터의 직원분은 일처리가 빠릿빠릿했다.
식상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은 생략하고 자신 앞에 있는 우리 엄마는 무시한 채 엄마가 건넨 서류와 눈을 맞추며 감정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업무를 진행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게 됐다. 그동안 수없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안녕하세요"의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바쁘더라도 누군가의 안부를 물어주는 건 때로 꽤나 필요한 친절함이라는 걸.
한국 영사관 일 이후, 나는 바쁜 계산대에서 손님의 안부를 묻는 마트 직원을 너무 답답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누군가의 엄마의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