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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ug 15. 2022

제2차 세계 대전 76년 후 폴란드에서 일어난 일

폴란드는 수세기간 강대국들의 사이에 끼어 수많은 전쟁을 겪었다. 한국과 비슷하게 참 기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가 지척에 있어, 전쟁 억제를 위해 나토 동맹국들로 이루어진 "전방 주둔 전투 그룹 (Enhanced Forward Presence Battle Group)"이 폴란드에 상주해있다. 2021년, 내가 있는 미군 부대는 이 "전방 주둔 전투 그룹"으로 폴란드에 일 년 동안 파병되었다.




가족을 떠나 파병을 가면 향수병을 앓는 병사들이 생긴다. 그러면 종교가 없는 병사들도 위로를 받기 위해 교회를 찾기도 한다.


폴란드에서 우리가 상주한 기지에는 전부터 대형 텐트 하나를 교회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지 한쪽 구석에 있는 이 텐트는 병사들이 지내던 막사와는 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걸어가기에는 꽤나 불편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여름에는 습하고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리는 폴란드에서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웠던 부대의 군목*은 다른 예배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꽤나 파격적인 장소를 찾아냈다. 


* 각 부대에서 기독교를 믿는 장병들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일을 맡아보는 목사. 군종감실이나 군종 참모부 소속의 장교이다.




폴란드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우리가 잠을 자던 막사도 그 당시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이었고, 훈련할 때는 2차 대전의 벙커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의 군목도 교회로 사용할 기가 막힌 전쟁 유물을 찾아냈다.


기지 안에는 땅에 반쯤 묻힌 옛 탄약창고들이 있었다. 아마 예전 독일군들이 전쟁을 대비해 탄약을 보관해두던 장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폴란드에 도착한 2021년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었고, 가끔 상관들의 눈을 피해 일탈을 즐기는 병사들이나 숨어들던 곳이었다. 스산한 벙커 바닥에서는 퀴퀴한 흙냄새가 났고, 병사들이 마시고 버린 술병이나 과자 봉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군목은 대대장의 허락을 받아 이곳을 교회로 바꾸기로 했다.

 

군목이 찾아낸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탄약고




대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군목은 손재주가 있는 병사들을 불러 모아 탄약고 내부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기지에서 쓰다 남은 목재를 모아 흙바닥 위에 마루를 깔고 강단을 만들었다. 성경과 다른 책들을 보관할 서가를 만들고 주말이나 평일 근무 후에 병사들이 모임 장소로 쓸 수 있도록 커피 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은 근무 후 자진해서 일을 하기로 한 병사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병사들이 꾸민 교회 내부. 겨울에는 난로에 불을 피워 교회 안을 덥혔다.


바쁘고 힘든 훈련 일정 속에서도 병사들은 시간을 내어 교회 만드는 작업에 자원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탄약고 위에 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들여오고 사비를 털어 내부 장식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탄약고 위에 손수 만든 십자가를 세웠다. 작업을 시작한 지 2개월 후, "탄약고 교회"가 완성되었다.


십자가를 만들어 탄약고 위에 세우는 병사들




1945년, 나치 독일의 패배로 제2차 세계 대전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이 살생을 위해 무기를 보관하던 탄약고는 버려졌다. 그 후로 76년 후. 그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살생이 아니라 파병에 지친 병사들의 마음 소생을 위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탄약고도 오래 살아남고 볼 일이다. 그곳에도 볕 들 날이 있다.


"탄약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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