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혼자 코스트코에 갔다.
딱 필요한 것만 사고 나오려고 했는데
하필 지나가던 사람의 카트에 담긴
로티세리 치킨을 봐버리고 말았다.
나는 배가 고팠나 보다.
평소에는 항상 그냥 지나쳤던
그 치킨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카트를 돌려 치킨 진열장 앞으로 갔다.
나처럼 유혹받은 사람이 많았던 건지,
닫을 시간이 다돼서 그랬던 건지
딱 두 마리가 남아있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한 남자가 "익스큐즈미~"
하며 한 마리를 집어간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치킨을 카트에 담는다.
이 치킨을 들고 집에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건 아니기를 바라면서.
집에 와서 치킨 다리를 묶고 있는 끈을 풀고
오동통한 닭가슴살을 한 움큼 뜯어 접시에 담는다.
보나 마나 퍽퍽할 테니 허벅지도 한쪽 뜯어 담는다.
손에 질펀하게 묻은 기름기를
싱크에서 씻은 뒤 행주에 손을 닦는다.
치킨만 먹으면 느끼할 테니
김치도 넉넉히 퍼서 접시 한쪽에 담는다.
냉장고에서 탄산수 한 캔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식탁에 접시를 내려놓고 보니
치킨이 꽤나 수북하다.
다 먹을 수 있을까.
다 먹어야 한다.
접시에 담은 치킨을 다시 보관할 수도 없다.
치킨과 김치를 한 접시에 담아버려서
치킨 살에 김치 국물이 질펀하게 적셔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귀찮으니까.
치킨을 다 먹으니 배가 불렀다.
뭐, 나쁘지 않았다.
아직 뜯지 않은 치킨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건 내일 문제다.
뜯지 않은 치킨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내 아내 케이트도 로티세리 치킨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나와 같았던 걸까.
항상 지나치던 내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였던 걸까.
그래서 덜컥 사귀게 되었을까.
7년 연애를 하다 보니
딱 한 마리만 남아버려서
카트에 담게 된 건 아닐까.
뭐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케이트는 폴챙이를 집에 가져왔고
나는 포장을 푼 그녀가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수밖에.
때로는 퍽퍽해서 목이 메고
때로는 느끼해서 속이 부글거리더라도
먹고 나면 그녀가 배불렀으면.
그리고 오늘은 질려버려 꼴 보기 싫더라도
남은 건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두었으면.
내 냉장고엔 엄청나게 큰 치킨이 남아있다.
밤이 깊어 그런가.
냉장고 속에 홀로 들어가 있는 치킨이 처량하다.
내일은 닭죽이나 끓여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