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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ug 17. 2022

그 치킨을 먹으니 배가 불렀다

오늘 혼자 코스트코에 갔다.

딱 필요한 것만 사고 나오려고 했는데

하필 지나가던 사람의 카트에 담긴

로티세리 치킨을 봐버리고 말았다.


나는 배가 고팠나 보다.

평소에는 항상 그냥 지나쳤던

그 치킨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카트를 돌려 치킨 진열장 앞으로 갔다.

나처럼 유혹받은 사람이 많았던 건지,

닫을 시간이 다돼서 그랬던 건지

딱 두 마리가 남아있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한 남자가 "익스큐즈미~"

하며 한 마리를 집어간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치킨을 카트에 담는다.

이 치킨을 들고 집에 갔을 때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건 아니기를 바라면서.




집에 와서 치킨 다리를 묶고 있는 끈을 풀고

오동통한 닭가슴살을 한 움큼 뜯어 접시에 담는다.

보나 마나 퍽퍽할 테니 허벅지도 한쪽 뜯어 담는다.


손에 질펀하게 묻은 기름기를

싱크에서 씻은 뒤 행주에 손을 닦는다. 


치킨만 먹으면 느끼할 테니 

김치도 넉넉히 퍼서 접시 한쪽에 담는다.

냉장고에서 탄산수 한 캔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식탁에 접시를 내려놓고 보니

치킨이 꽤나 수북하다.

다 먹을 수 있을까.


다 먹어야 한다.

접시에 담은 치킨을 다시 보관할 수도 없다.

치킨과 김치를 한 접시에 담아버려서

치킨 살에 김치 국물이 질펀하게 적셔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귀찮으니까.




치킨을 다 먹으니 배가 불렀다.

뭐, 나쁘지 않았다.


아직 뜯지 않은 치킨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건 내일 문제다.


뜯지 않은 치킨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내 아내 케이트도 로티세리 치킨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나와 같았던 걸까.


항상 지나치던 내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였던 걸까.

그래서 덜컥 사귀게 되었을까.


7년 연애를 하다 보니

딱 한 마리만 남아버려서

카트에 담게 된 건 아닐까.


뭐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케이트는 폴챙이를 집에 가져왔고

나는 포장을 푼 그녀가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수밖에.


때로는 퍽퍽해서 목이 메고

때로는 느끼해서 속이 부글거리더라도

먹고 나면 그녀가 배불렀으면.


그리고 오늘은 질려버려 꼴 보기 싫더라도

남은 건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두었으면.




내 냉장고엔 엄청나게 큰 치킨이 남아있다.


밤이 깊어 그런가.

냉장고 속에 홀로 들어가 있는 치킨이 처량하다.


내일은 닭죽이나 끓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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