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항상 새로운 표현을 찾는다.
상투적인 문구나 진부한 표현,
영어로 클리셰(cliché)는
작가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클리셰는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된 단어인데,
그 어원은 프랑스어 "clicher"에서 찾을 수 있다.
clicher의 뜻은 영어로 "to make stereotype, "
즉 "스테레오타입을 만들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스테레오타입"이란 무엇일까?
영어 stereotype을 영한사전에 찾아보면
"고정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하지만 스테레오타입이 처음부터
"고정관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옛날 유럽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조판"이라는 게 생겼다.
조판은 쇠로 만들어진 활자들을 배열해
판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조판을 사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쇠로 된 활자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판에 끼워 넣어
찍어내고 싶은 글을 만든 뒤,
그 위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를 올린다.
그리고 종이 위에 무거운 쇠판을 눌러
글자를 "찍어 낸다."
이게 예전 인쇄 방식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각각의 활자들을 판에 넣고 고정한 뒤 찍어내다 보니
찍으면 찍을수록 활자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연판(鉛版: 납 연, 널조각 판)이라는 게 발명됐다.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 연판은 납으로 만들어진 판이다.
조판은 활자들을 모아서 꽉 조여둔 것이지만,
연판은 쇠를(보통 납을) 부어 만든 한 덩어리의 판이다.
그리고 이 연판이 바로 "스테레오타입"이다.
영어로 sterotype은
"stere"와 "type" 두 단어의 합성어다.
앞부분 "stere"는
"굳은, 고체의"이라는 뜻이다.
뒷부분 "type"은
"활자"라는 뜻이다.
앞 뒤를 합치면
"굳은, 고체의 활자"라는 뜻이 된다.
"판에 박힌 표현"이라는 관용구도
여기서 비롯됐다.
부어 만든 연판의 장점은
활자가 떨어져 나갈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같은 글을 수천 장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판을, 스테레오타입을 한 번 만들어 두면
변함없는 글을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이 관념(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변함없이 같은 글을 찍어내는 스테레오타입은
영한사전에 나온 대로 "고정관념"이 맞다.
지금은 스테레오타입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 스테레오타입은 꼭 전하고 싶은 글을, 관념을
변함없이 찍어내주는 소중한 도구였다.
그리고 옳은 관념은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 번 옳은 것을 찾아냈다면
그것을 고정시키는 것이 맞다.
옳은 관념은 고정관념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올해 결혼을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할 때 그 마음이 평생 갈 수는 없다고.
처음 그 뜨거운 사랑이 지속될 수는 없다고.
물론 내가 남들과 달리 특별한 사람은 아니니
나도 나중에는 그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내와 결혼하고 싶게 만든
내 아내 케이트가 사랑스러운 이유,
케이트에 대한 관념만은 잊지 않고 싶다.
케이트에 대한 관념이 내 마음에 평생 고정될 수 있도록,
평생 그 마음을 찍어낼 수 있도록,
내 안의 연판,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