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챙 Dec 23. 2022

난 미처 몰랐다. 대구에서도 해산물이 나는지를.



나는 미국에서 23년째 살고 있다.



내 아내는 잠시 한국 처갓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연말에 나도 한 달 반 가량 대구 처갓집에서 지내게 됐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오랜만에 20년 된 친구와 통화를 하며

당분간 처갓집에서 지내게 됐다는 말을 했다.



일찍 결혼해 벌써 아이가 둘이나 있는

친구는 그 말을 듣자 말했다.



"이야~ 이제 해산물 많이 먹겠네?"



( 응?? )



순간 무슨 말인가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친구의 장모님은 부산 분이셨다.

처음 처갓집에 갔을 때,

매끼마다 해산물이 빠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아~ 우리 처갓집은 대구잖아."



"아, 그럼 고기를 많이 먹겠네."



"그러려나?

올봄에 갔을 때도 장모님이 엄청 잘해주셨어."



"좋겠네! 좋은 시간 보내다 와!"



오케이!






우리 집은 아들만 셋이다.



그런 삭막한 집에 첫 번째로 시집온 내 아내를

우리 부모님은 참 좋아하신다.


 

그리고 며느리의 매력에 푹 빠지신 우리 아버지는,

내가 한국 처갓집에 간다니까

며느리 힘들게 공항으로 데리러 오게 하지 말고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내는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차를 끌고 와줬고,

나는 편하게 아내의 차를 타고 대구로 왔다.



처갓집에 도착해 반갑게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독일에 유학을 가있는 처남 방에 짐을 풀었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온 게 아니라서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처남 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똑똑똑.



방문을 열어보니 장모님이셨다.



"장 서방, 아침 먹고 일하게!"



그리고 장모님 손에 들린 쟁반 위의 음식을 본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쟁반 위 큼직한 접시 위에는

뽀얗게 삶아진 닭 한 마리가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장모님이 사위를 위해 잡아주신다는 씨암탉이란 말인가.



백숙과 함께 장모님이

정갈하게 담아주신 반찬 중에는

깍두기, 잡채와 함께 갈치속젓도 있었다.



갈치속젓을 보니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나

조용히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

우리 장모님은 고기뿐 아니라 해산물도 챙겨주신다네.






처갓집에서 지내다 보니

역시 결혼 선배 친구의 말이 맞았다.



나는 첫 끼를 백숙으로 시작해

매끼마다 빠지지 않고 고기를 먹었다.



정말 매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은 반만 맞았다.



나는 고기를 많이 먹었지만

해산물도 정말 많이 먹었다.



첫 끼에 챙겨주셨던 갈치속젓은

그다음 몰려올 해산물들의 선발대에 불과했다.



전복

홍합

대게

새우

가리비

가자미

조기

갈치

상어

장어

방어

광어

전복, 전복, 전복, 그리고 전복






대구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산으로 둘렸으니 바다가 없고,

바다가 없으니 당연히 해산물도 안 난다.



하지만 장모님의 사랑은,

그런 지리쯤은 아랑곳 않고

분지에서도 해산물이 나게 한다.

(특히 전복을)






그게 누구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 그랬다고 했던 거 같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중 하나는 망각이라고.



그리고 신은,

나에게도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한국 처갓집에 와서 나는,

공복을 잊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