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efficient)과 효과적(effective)이라는 말이 있다.
효율적인 것은 최소한의 자원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고효율 자동차는 최소한의 기름으로 자동차를 달리게 한다.
효과적인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스포츠카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기름을 아낌없이 불태운다.
내 남편은 남들 앞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흉을 본다.
하지만 남편은 모른다. 남들 앞에서 자기 아내 흉보는 남편은 아주 효율적으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다는 것을.
남편은 가족들 앞에서 내 흉을 본다
남편은 자기 가족 앞에서 내 흉을 본다. 그리고 흉은 꼭 말로만 보는 게 아니다. 자기 입맛에 맞춰 매끼 꼬박꼬박 먹여놨더니, 남편은 자기 엄마 집에만 가면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댄다. 시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며느리는 흘겨본다. 현명한 시어머니는 그렇게 먹는 아들을 보며 너만 처먹지 말고 네 아내 좀 챙기라고 할 테지만 말이다.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 내 흉을 본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엄마를 무시하는 아빠의 언행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기도 엄마를 무시하거나, 그런 아빠의 모습에 불만과 미움이 쌓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인간은 익숙한 것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아빠 같은 남자가 되거나, 딸들은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 앞에서 내 흉을 본다. 기분 나쁘게 은근슬쩍 장인·장모 앞에서 아내를 깎아내린다. 부모님 앞에서 내 흉을 보는 건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는 행위다. 자기 아내 흉보는 사위를 보며, 우리 부모님은 저런 놈과 사는 딸 생각에 마음이 더 무너진다.
남편은 다른 여자 앞에서 내 흉을 본다
남편은 자기가 못된 아내를 만난 불운한 사내인 마냥 다른 여자 앞에서 아내 흉을 본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런 아내를 품고 산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마치 자기가 희생적인 멋진 남편인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정상적인 여자는 그 앞에서 욕지거리를 날리거나, 자리를 뜨거나, 듣기 싫어 말을 돌리거나, 사회적인 의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할 땐 듣긴 듣지만 속으로는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마음은 여자가 제일 잘 안다. 아내 흉을 보는 남편은 자기가 불쌍한 남자처럼 보이는 줄 알지만, 듣는 여자는 남들 앞에서 아내 흉보는 남편과 같이 사는 여자를 불쌍히 여긴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반드시 결혼하라. 좋은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다.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 아내 말도 들어봐야 한다. 그는 자기가 철학자가 되고 싶어 아내를 악처로 만든 남편일지도 모른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다 똑같다
인터넷에서 강연을 듣거나 글을 읽다 보면 아내들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 남자를 볼 때가 있다. 공감과 웃음을 자아내며 남편들의 꼴 보기 싫은 진상짓을 꼭꼭 집어 만천하에 드러내준다. 저렇게 여자 마음을 잘 이해하다니. 저런 남자와 같이 사는 여자는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워진다.
하지만 기억하자. 전 국가대표 축구 감독이 선수들을 나무라기도 하지만, 50미터 달리기도 못하는 동네 아저씨도 국가대표 선수의 실수에 대해 조목조목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있다. 규칙과 관전 포인트만 잘 알면 된다.
하지만 타인의 잘못을 잘 알아본다고 자기가 잘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기는 못하면서 말만 잘하는 놈이 더 꼴 보기 싫다. 남들 앞에서 말 잘하는 남편 옆에 있는 아내 마음이 제일 썩어 들어가는 법이다.
남의 집 남편은 같이 살아보기 전엔 모른다. 알고 싶어 다른 놈과 살아볼 수도 없으니 어느 놈도 믿지 말고, 어느 놈과 같이 사는 여자도 부러워말자. 내 남편은 똥이지만 다른 집 남편은 지뢰일 수도 있다. 똥은 밟으면 닦으면 되지만, 지뢰는 밟으면 죽는다.
그리고 찌질한 남편에 대해 떠드는 남편이라고 덜 찌질한 남편인 것도 아니다. 하여간 남편은 쓸만한 놈이 없다.
내가 그렇다.
폴챙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