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by 폴챙



머지않은 미래엔 단순한 일들이 로봇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이미 기계를 관리하는 소수 인원만 근무하는 거대 공장들이 존재하고, 레스토랑에선 테이블에 있는 태블릿으로 주문하고 로봇이 음식을 서빙한다.


사람보다 말 잘 듣고 일도 잘하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내 남편도 누가 좀 대체해 줬으면 좋겠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내 남편이 잘하는 거라곤 내 속을 태우고 피를 말리는 것뿐이다. 지금 남편이랑 사는 것도 죽겠는데, 이런 남편짓을 더 잘하는 로봇이 생긴다면 큰일이다. 그땐 정말 세계 종말이다.






남편은 한 번에 하나 밖에 못한다


결혼하고 두 사람이 함께 살면 싱글일 때 혼자 하던 일을 같이 하게 된다. 백지장은 맞들면 낫고, 고단한 인생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한결 수월해진다. 그래야 맞다. 근데 결혼하니 남편은 자기 하기 싫은 걸 나한테 다 떠넘긴다. 요리, 빨래, 청소, 자기 식구들의 경조사, 그리고 자신의 심리적 안정까지. 둘이 결혼했는데 한 사람만 편안해지는 이상한 삶이 펼쳐진다.


남편에게 뭘 시키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설거지를 시키면 그릇에 얼룩은 그대로인데 싱크 주변은 물난리다. 아내 생일에 기껏 미역국 하나 끓이면서 부엌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몰라서 찬장 열고 닫느라 아침 내내 시끄럽다. 당연히 챙겨야 할 아내 생일 겨우 생각나서 챙겨놓고 엄청 뿌듯해한다. 자기가 이렇게 멋진 남자라고 여기저기 떠들고는 자기 엄마 생일은 까먹어서 시어머니 섭섭함은 아내가 다 받아내게 한다.


당연히 같이 해야 하는 집안일을 안 해서 뭐라 하면 자기 일하느라 힘든데 왜 시키냐고 더 화내고, 마지못해 해 줄 땐 딱 시킨 것만 한다. 세탁기가 다하는 빨래 한 번 돌려놓고 뿌듯하게 소파로 쉬러 간다. 이제 혼자 양말 신을 줄 알게 된 어린애가 외출 전 혼자 양말 신고 뿌듯해하는 것 같다. 어린애는 혼자 팬티 입고 양말 신을 줄 알면 자기가 어른이 된 줄 안다. 남편은 집에서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면 지가 남편인 줄 안다.


한 번에 하나 밖에 신경 못쓰는 남편은 올해 아내 생일 까먹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일 년 내내 뿌듯해한다. 그러고는 아내가 자기 밥 한 끼만 제때 안 챙겨줘도 일 년 내내 섭섭해한다.


물론 이러지 않는 남편도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로 옷 갈아입고 집안일을 시작하고, 아내 생일은 물론 장인어른 장모님에 처남 처제 생일 선물까지 센스 있게 챙기는, 매일 저녁 자기가 정성스레 차린 저녁을 아내와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 게 아니라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아내가 밖에서 사람들에 치여 기분이 안 좋으면 어떻게 풀어줘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그런 남편 있을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는 있을 수 있다.


만약 실제로 저런 남편이랑 사는 여자가 있다면, 전생에 히틀러 정도의 빌런은 암살했을 거다. 나는 그냥 암살하고 싶은 빌런이랑 산다.







남편은 내 말의 요지를 모른다


남편은 이해심도 없으면서 이해력도 부족하다.


화난다고 소리 좀 지르지 마라, 지르지 마라, 제발 좀 그러지 마라. 우리도 정상적인 대화 좀 해보자. 부탁하고, 애원하고, 화도 내보지만, 돌아오는 건 화나게 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남편뿐이다. 소리치는 저 놈의 목을 치고 싶다.


하지만 절망 후엔 반드시 희망이 찾아온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고, 이 집구석에도 해 뜰 날 있다.


송대관이 옳았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아내가 노력하면은 안 되는 일이 없다. 그렇게 입만 열면 지 성질 못 이기고 소리 지르던 남편이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춘다. 드디어 내 남편이 변했구나. 역시 신은 내 기도를 들으시는구나. 조용해진 집안에 나도 놀라고 아이들도 놀란다.


그런데 소리 지르기를 멈춘 남편은 아예 입을 닫아 버린다. 인상 쓰고 티브이만 본다. 대화를 시도하면 네가 소리 지르지 말래서 지금 그러는 중이니까 저리 가라고 한다. 말하면 소리 지를 거 같으니까 조용히 하라고 한다. 이 인간은 사람 말의 요지를 모른다. 그냥 요지로 눈알을 찔러버릴까 보다.


내 남편과 사는 이 사막 같은 삶에도 쨍하고 해가 뜨긴 뜬다. 근데 샘물하나 없는 사하라 사막에 뜨는 죽음의 태양이다. 사막에선 해 뜨면 타 죽고, 해지면 추워서 얼어 죽는다. 극과 극이다. 남편과 함께 하는 삶에 따뜻함이나 선선함 같은 적당하고 기분 좋은 날씨란 없다.






비록 그런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


비록 없느니만 못한 남편이지만, 마음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밤늦게라도 매일 집에는 들어오고, 좋은 일 있으면 얘기해 주고, 가끔은 먹다 남은 맛있는 것도 싸들고 온다. 아주 가끔은 그저 나는 남편 있는 여자라는 사실이, 그저 남편의 존재가 든든하다.






남편이 또 배고프다고 나를 부른다. 그가 굳이 숨까지 쉬면서 존재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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