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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Feb 05. 2024

어느 월요일 아침, 난 신세계 샤넬 매장을 향해 뛰었다



언젠가 여성용 핸드백 사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본 적 있다.


오렌지색 박스에 둘러 쌓인 화려한 복장의 여성 유튜버는 핸드백 하나를 아주 소중히 다루며, 기분에 따라 핸드백 손잡이에 스카프를 이렇게 두르면 새로운 가방을 드는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근데 스카프는 원래 목에 두르는 거 아니었나?


여성은 손잡이에 두른 그 스카프가 60만 원이 넘는 스카프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또 생각했다:


저렇게 비싼 스카프는 손잡이에 두르는 게 아니라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60만 원짜리 스카프를 손잡이에 둘러서 새로운 기분을 낼 바에야 차라리 그 돈으로 새 핸드백을 하나 더 사는 게 낫지 않나?


근데 60만 원짜리 스카프를 두른 저 핸드백은 2천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미국에선 400만 원이면 총알도 막아주는 최고급 방탄조끼를 살 수 있다. 저 핸드백은 핵탄두라도 막아주는 걸까?






문화(文化)


흔히 "문화" 하면 케이팝 같은 예술 장르가 떠오른다. 하지만 문화는 그런 예술 외에도 의식주를 비롯한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하는 특정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이다. 그리고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반복된 행위와 허용에 의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돈이 많으면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나라가 있다고 하자. 법조인과 정치인들이 그런 행위를 반복하고,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런 행위를 침묵으로 허용하면, 그 나라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화가 형성된다. 하지만 그 나라의 국민, 언론, 용기 있는 법조인 등의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행위를 허용하지 않기 시작하면 그 문화는 사라질 수도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속담이 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인데, 반만 맞는 말이다. 만약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랐는데 그곳에 법을 따르지 않는 문화가 있다면, 오히려 법을 따르다 경찰에게 체포될 수도 있다. 이 속담은 원래 영어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라고 한다. 직역하면 "로마에 있을 땐 로마 사람들을 따라 하라"는 뜻이다. 어딜 가던 눈치껏 그곳 사람들을 따라 하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난 로고 달린 거 별로야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명품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알아보는 명품이라곤 갈색 루이뷔통 무늬가 전부였고,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허영심 가득한 사람이라 판단했다.


아내를 만나 연애를 시작한 후, 아내는 나에게 지갑을 하나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너무 비싼 지갑을 사줄까 걱정이 앞섰던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난 명품 필요 없어. 로고 달린 명품 지갑은 사줘도 어디 가서 창피해서 못 꺼낼 거 같아. 나는 브랜드 없는 그냥 깔끔한 지갑이면 충분해. 그래 저기 저런 거. 저렇게 그냥 새까만 반지갑.


응, 오빠. 저건 에르메스고, 200만 원짜리야. 로고 달린 게 훨씬 싸.






내가 모르는 문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을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하지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그리고 현재 적극적으로 속하지 않은 집단의 문화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내가 지금 살고 있지 않는 나라, 내가 지금 다니지 않는 회사, 내가 지금 복무하고 있지 않은 군대, 내가 지금 다니거나 근무하고 있지 않은 학교, 내가 믿지 않는 종교 등등. 내가 모르는 공동체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고, 내가 예전에 속했더라도 현재 멤버가 아니라면 속단은 금물이다. 어딜 가나 라떼만 찾는 꼰대는 진상이다.


물론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순 있지만, 어느 집단의 문화가 다른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존중해주어야 한다. 그건 쇼핑문화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명품 문화


가뜩이나 비싼데 돈을 줘도 못 사는 물건들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샤넬과 롤렉스가 그렇다.


인기 많은 샤넬백이나 롤렉스 시계를 구경이라도 하려면 백화점 개장 전부터 대기했다가 매장에 입장해야 한다. 그렇게 가도 매장에 항상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가게에 가면 물건을 구경하고 원하는 물건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샤넬이나 롤렉스는 다르다. 직원이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거밖에 없는데 살래요 말래요? (물론 이것보다는 친절하다.)


돈이 있다고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명품 시계 오데마피게(Audemars Piguet)나 파텍필립(Patek Philippe) 같은 브랜드는 고객 심사를 통해 시계를 누구에게 판매할지 말지 결정한다고 한다.


더러워서 안 사고 만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24년, 한 월요일 아침


우리 장모님은 능력 있는 사업가이시지만 티를 내진 않으신다. 모든 물건을 오래 소중히 쓰시며, 항상 과하지 않은 우아한 모습을 하고 계신다.


올해 장모님 생신을 맞아, 아내와 처남은 오래된 지갑을 쓰시는 장모님을 위해 함께 샤넬 지갑을 선물하기로 계획했다. 근데 샤넬 지갑이 돈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리 따로 장모님 선물을 준비한 나는, 아내와 동행하며 샤넬 지갑 구입에 돈대신 발품을 보태기로 했다.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을 소재로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가 있다.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을 모티브로 한) 극 중 이태신 장군은, 반란이 일어난 내내 반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수도를 밤새 뛰어다니셨다.


그 후 45년 뒤 2024년, 한 월요일 아침, 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샤넬 지갑을 사려고 대구 신세계 백화점이 열자마자 샤넬 매장을 향해 뛰었다. 뛰면서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장태완 장군은 민주주의를 위해 밤새 달리셨는데 나는 이 아침에 지금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나.


그렇게 뛰고도 물건이 없어서 난 그렇게 일주일을 뛰었다.


그렇게 난 민주주의가 아닌 신상 하늘색 샤넬 장지갑을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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