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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Feb 03. 2024

재미교포가 한국에서 운전할 때 의아한 것 3가지



난 재미교포다. 운전은 미국에서 배웠다. 한국을 방문해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한국 사람들은 운전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좁은 골목을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운전하고, 마치 레이싱 선수처럼 끼어들기를 시전 한다. 그래서 난 한국에 올 때면 한국에서 운전 경험이 많은 아내에게 운전대를 양보한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에 사는 재미교포가 한국 도로를 관찰하며 의아했던 3가지를 소개한다. 그저 한 개인의 단편적인 경험이다.






1.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차를 기다린다


아무리 화가 나도 딱 봐도 질 싸움은 시작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난 감히 아내와 말싸움을 시작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보행자와 운전자의 싸움에도 승자와 패자가 정해져 있다. 자동차가 보행자를 치는 사고가 나면 웬만해선 운전자 잘못이다. 특히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에는 운전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미국에서 신호등 없는 도로 횡단보도에 접근할 때면 긴장이 된다. 갑자기 사람이 건널 수도 있으니 속도를 줄이고 사람이 있는지 살핀다. 보행자가 저 멀리서 횡단보도에 들어서려는 기미만 보여도 일단 차를 멈추고, 보행자가 건너지 않겠다는 확실한 제스처를 보일 때에만 보행자보다 먼저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한국 도로에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주는 경우를 자주 본다. 내가 "횡단보도"라는 단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던 걸까. 가끔 차가 나를 기다려주는 경우에도 내가 횡단보도에서 몇 걸음 옮기고 차가 지나갈 공간만 생기면,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나를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차가 나를 지나쳤다.






2. 구급차가 양보를 고마워한다


미국 구급차는 꽤나 위협적으로 깜빡이는 빨간 불과 시끄러운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한다. 차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구급차를 보면 알아서 비킨다. 가끔 초보운전자나 부주의한 운전자가 구급차를 인지하지 못해 비키지 않으면 구급차는 무섭게 빵빵거린다. (환자 상태에 따라 고음의 사이렌이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불빛만 켜고 달리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반해 내가 본 한국 도로의 구급차는 꽤나 다정한 초록불빛을 깜빡이며 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구급차량 뒷유리에는 아주 신기한 문구가 쓰여있었다: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급차가 양보를 받는 게 감사할 일인가? 응급구조사(EMT) 자격증을 따기 위해 미국 시애틀 소방국 구급차를 타고 실습을 다닌 적이 있다. 소방관과 응급구조사들은 가끔 빨리 비키지 않는 차량들에 분개하며 사이렌을 울렸다. 물론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든 구급차가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싣고 달리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지나갈 때마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차들이 비켜주는 문화가 없으면, 정말 생명이 위급한 환자 한 명을 살릴 수 없다.


법조계에는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10명의 위급하지 않은 환자를 실은 구급차를 위해 길을 내어주는 일이 있더라도, 한 명의 위급한 환자를 살리기 위해 언제나 그렇게 해야 한다.


구급차가 지나갈 땐 양보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비켜야 한다. 구급차는 양보해 준 차량에게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빨리 안 비키는 차량을 혼내야 한다.






3. 택시가 아무 데나 차를 세운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공항 가는 택시를 잡은 적이 있다. 택시 기사분은 승객을 태우고도 좋지 않은 도로상황에 계속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었다. 설레는 신혼여행길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게다가 자꾸 위험하게 차선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바람에 내내 불안했는데, 결국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하다 양보해주지 않는 차량과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사고가 나자 기사님은 승객은 아랑곳 않고 도로 중간에 택시를 세우고 내려 상대 차량 운전자와 언성을 높이며 다툼을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다른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향했다. 물론 택시비는 지불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갑자기 차를 세우고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주거나 기다리는 택시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때론 횡단보도에 중간에 떡하니 서기도 하고, 터미널 앞 도로에는 손님을 기다리며 줄을 서있는 택시들이 장사진을 이루어 복잡한 도로상황을 만들어낸다.






이게 정상은 아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찾아봐야 하는 성격이다.


한국 도로에서 의아했던 3가지에 대한 도로교통법을 찾아보았다:

1.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기다리지 않는 차량 [도로교통법 제27조(보행자의 보호)]

2. 구급차가 와도 빨리 비키지 않는 차량 [도로교통법 제29조(긴급자동차의 우선 통행)]

3. 아무 데나 정차하는 택시 [도로교통법 제32조(정차 및 주차의 금지)]


내가 의아했던 3가지 모습은 전부 정상이 아니었다.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차량이 멈춰야 하고, 모든 차량은 구급차가 접근할 때 ("감사하게도"가 아니라 당연히) 구급차가 우선통행할 수 있도록 진로를 양보해야 하고, 택시를 비롯한 모든 차량은 지정된 장소 이외의 장소에서 정차하면 안 된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다


횡단보도에선 운전자가 보행자를 기다려야 한다는 대한민국 도로교통법을 확인한 후, 나는 내 권리를 행사하기로 했다.


물론 횡단보도라도 갑자기 뛰어드는 자살행위는 하지 않는다. 운전자가 나를 보행자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당당히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가며 나는 이 횡단보도를 건널 것이라는 큰 제스처를 취한다. 부주의하게 질주하는 차량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다가오는 차량의 운전자와 시선을 맞추며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 모국에서 차에 치여 죽을 뻔했다.




배우 이동욱 주연의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에 이런 명대사가 있다.


치열한 전투 후 용병들의 리더가 이렇게 묻는다: "야, 우리 지옥 가는 날이 언제지?"


팀원들은 소리친다: "오늘은 아니지!"


내가 죽을 날도 오늘은 아니다.


다음번엔 기꺼이 운전자에게 횡단보도를 양보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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