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챙 Feb 04. 2024

오늘 굳이 쓰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지만 그래도 씁니다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오늘 하루 글쓰기를 멈춰도 큰일 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 글 쓰지 않는다고 내일 출근할 직장이 없어지는 것도, 오늘 하루 글 안 쓴다고 뭐라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쓴다고 읽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오늘도 글을 쓴다.






오늘이 지나면 오늘이 아쉬워질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나면 항상 마지막 날 밤이 제일 아쉽다. 이제 이곳이 조금 익숙해졌는데, 이제 이곳의 묘미를 좀 알겠는데 내일이면 여기를 떠나야 한다니. 여행 기간 내내 부지런히 이곳을 누리지 않은 내가, 집에서도 잘 수 있는 늦잠을 굳이 여행지까지 와서 자버린 내가 원망스럽다.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쉽고 아깝다. 평생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은 곳으로 떠난 해외여행에선 더 그렇다. 사람은 왜 흘려보내고 나서야 왜 아까운 걸 깨닫게 되는 걸까.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낼 때가 많다. 워낙 속이 좁아서 화가 나면 책을 읽는답시고 서재로 갔다가 그냥 그곳에서 잠들 때도 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속좁았던 내 모습을 반성하며 아내에게 사과를 한다. 아내는 이런 다중인격자 같은 나를 매번 받아준다. 그런 아내를 보면 더 미안해진다. 그리고 아내를 안 좋은 마음으로 잠들 게 한 지난밤이 아까워진다. 왜 나는 지나고 나서야 꼭 깨닫는 걸까.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화가 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는 화를 풀기 바랍니다. (쉬운 성경, 에베소서 4장 26절)


굳이 해가 지기 전에, 잠에 들기 전에 화를 풀지 않아도 된다. 내일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화를 풀지 않고 내일이 되면, 아내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잠들지 못한 어젯밤이 아쉽고 아까워질 수도 있다.


 




바빴던 오늘이지만 잊지 않기 위해 한 줄을 긋는다


2000년에 개봉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리기도 하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있다.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표류된 남자 주인공 척 놀랜드는 구조되기까지 4년을 혼자서 살아간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간장이나 초장도 없이 생으로 뜯어먹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불을 피우는 그의 모습은 원시인 같다. 생존을 위해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바쁘고 알차게 살아간다.


그렇게 열심히 생존하는 남자 주인공이 매일 잊지 않고 하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날짜를 세기 위해 동굴 벽에 줄 하나를 긋는 일이다. 죽도록 열심히 살아낸 하루에 한 줄씩. 줄을 긋지 않는다고 오늘 살아낸 하루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기억에서 잊힐 수는 있다. 그리고 가끔 수없이 그어진 줄을 세어보며 '나 여기서 이만큼 살았구나' 하며 날들을 되새긴다. 


나는 무인도에 표류하지도 않았고, 무려 몇 백 년 전 달력까지 볼 수 있는 핸드폰이 있다. 하지만 나 오늘 하루도 살았다고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 한 줄 글을 쓴다. 동굴 속 그어진 줄들처럼 남들에겐 별 볼일은 없지만, 가끔 돌아보며 '나 여기서 이만큼 살았구나'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에게 야밤에 같이 글 쓰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