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직업인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오늘 하루 글쓰기를 멈춰도 큰일 나지 않는다.
오늘 하루 글 쓰지 않는다고 내일 출근할 직장이 없어지는 것도, 오늘 하루 글 안 쓴다고 뭐라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글을 쓴다고 읽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굳이 오늘도 글을 쓴다.
여행을 떠나면 항상 마지막 날 밤이 제일 아쉽다. 이제 이곳이 조금 익숙해졌는데, 이제 이곳의 묘미를 좀 알겠는데 내일이면 여기를 떠나야 한다니. 여행 기간 내내 부지런히 이곳을 누리지 않은 내가, 집에서도 잘 수 있는 늦잠을 굳이 여행지까지 와서 자버린 내가 원망스럽다. 그냥 흘려보낸 시간이 아쉽고 아깝다. 평생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은 곳으로 떠난 해외여행에선 더 그렇다. 사람은 왜 흘려보내고 나서야 왜 아까운 걸 깨닫게 되는 걸까.
나는 아내에게 화를 낼 때가 많다. 워낙 속이 좁아서 화가 나면 책을 읽는답시고 서재로 갔다가 그냥 그곳에서 잠들 때도 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속좁았던 내 모습을 반성하며 아내에게 사과를 한다. 아내는 이런 다중인격자 같은 나를 매번 받아준다. 그런 아내를 보면 더 미안해진다. 그리고 아내를 안 좋은 마음으로 잠들 게 한 지난밤이 아까워진다. 왜 나는 지나고 나서야 꼭 깨닫는 걸까.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화가 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는 화를 풀기 바랍니다. (쉬운 성경, 에베소서 4장 26절)
굳이 해가 지기 전에, 잠에 들기 전에 화를 풀지 않아도 된다. 내일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화를 풀지 않고 내일이 되면, 아내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잠들지 못한 어젯밤이 아쉽고 아까워질 수도 있다.
2000년에 개봉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리기도 하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있다.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표류된 남자 주인공 척 놀랜드는 구조되기까지 4년을 혼자서 살아간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간장이나 초장도 없이 생으로 뜯어먹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불을 피우는 그의 모습은 원시인 같다. 생존을 위해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바쁘고 알차게 살아간다.
그렇게 열심히 생존하는 남자 주인공이 매일 잊지 않고 하는 한 가지 일이 있다. 날짜를 세기 위해 동굴 벽에 줄 하나를 긋는 일이다. 죽도록 열심히 살아낸 하루에 한 줄씩. 줄을 긋지 않는다고 오늘 살아낸 하루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기억에서 잊힐 수는 있다. 그리고 가끔 수없이 그어진 줄을 세어보며 '나 여기서 이만큼 살았구나' 하며 날들을 되새긴다.
나는 무인도에 표류하지도 않았고, 무려 몇 백 년 전 달력까지 볼 수 있는 핸드폰이 있다. 하지만 나 오늘 하루도 살았다고 오늘을 기억하기 위해 매일 한 줄 글을 쓴다. 동굴 속 그어진 줄들처럼 남들에겐 별 볼일은 없지만, 가끔 돌아보며 '나 여기서 이만큼 살았구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