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주방에는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았다.
엄마, 이 고기 너무 오래된 거 아니야?
엄마, 이 양념 버려야 할 거 같은데?
엄마, 딸기에 곰팡이 슬었는데?
엄마! 이 찬장에 있는 거 전부 다 유통기한 지났네!
아닌 게 아니라 엄마의 주방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 많았다. 유통기한이 쓰여있지 않은 고기나 채소는 엄마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유통기한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조미료나 양념류 중에는 심지어 10년이 지난 것도 있었다. 나는 매번 다 버리고 새로 사라고 했지만, 엄마는 괜찮다며, 다 먹을 거라며 놔두라고 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준 음식을 먹고 탈 난 적은 없다.
유통기한이 지난 건 음식만이 아니었다.
엄마, 상한 영양제 먹으면 오히려 몸에 해로워!
엄마, 화장품도 오래되면 상해서 쓰면 안 돼!
하지만 항상 결국 엄마의 승리였고, 엄마 몰래 쓰레기통에 버린 물건들도 뒤만 돌아서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전, 아내와 한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나 먼저 미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곧 보자며 공항에서 날 배웅하던 아내는, 미국에 혼자 있어도 꼭 건강하게 잘 챙겨 먹으라며 신신당부했다.
미국에 돌아온 나는 집에 어떤 식재료가 있나 확인하려고 주방 팬트리(pantry: 식료품 저장실) 정리를 시작했다.
먼저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꺼내기 시작하니 라면, 3분 카레, 햇반, 조미김, 블록 미역국 등등, 어느새 간편 식품으로 싱크대 위가 가득 찼다. 유통기한이 길게는 1년도 넘게 지난 것도 있었지만, 짧게는 한 달 밖에 안 지난 것들도 많았다.
싱크대 위 쌓인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버리려니 마음 한편이 쓰렸다. 저 라면은 세일을 많이 해서 산 거였는데, 저 햇반이랑 미역국은 급하게 한식이 땡길 때 먹으려고 쟁여둔 거였는데, 저 3분 카레는 매콤한 거 땡길 때 먹으려고 아껴둔 건데, 저 조미김은 입맛 없을 때 부셔서 계란프라이 반숙이랑 비벼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원래 레트로 식품은 저장용으로 만든 거고, 군대에서는 만든 지 20년 된 전투식량도 먹는데, 일 년쯤 지난 음식을 버리는 건 못할 짓이었다. 난 결국 유통기한 음식을 다 먹어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건강하게 먹을 거라는 아내와의 약속이 있었으니 유통기한 지난 라면에는 계란을 4개씩 넣어 먹었고, 유통기한 지난 햇반과 미역국은 신선한 신 김치를 곁들였다. 쩐내 나는 조미김은 얼큰한 라면 국물에 씻어 먹었다.
그렇게 며칠을 먹고 나니 점점 속이 부대끼기 시작했다. 숨만 쉬어도 밀가루 냄새와 가공식품의 짠내가 올라왔고, 몸은 내게 이제 그만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맨날 나에게 오늘은 뭐 먹었냐고 묻는 아내도 점점 내가 건강하게 먹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아내는 다 알지만 일단 용서해 주겠다는 듯 내게 말했다.
오빠, 채소도 좀 먹어.
그래, 사람은 유통기한 좀 지난 거 먹어도 죽진 않는다.
엄마의 음식은 비록 유통기한 좀 지난 조미료가 들어갔을망정 항상 맛있고 건강했다.
하지만 나처럼 미련하게 먹으면 몸이 상한다.
삼시 세끼를 먹어도 며칠은 더 먹을 수 있을 만큼의 라면이 싱크대 위에 아직 남아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들에게 일단 잠시 이별을 고하기로 했다.
그리고 난 텁텁한 입맛을 헹구기 위해 냉장고에 남아있는 유통기한이 2주 지난 그릭 요거트를 꺼냈다.
요거트는 원래 발효식품이라 유통기한이 좀 지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