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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챙 Apr 01. 2024

냉동광어회는 안 먹겠다던 아내가 젓가락 두 벌을 내왔다



요즘은 구글 무서워 말도 함부로 못 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잠시 미국과 한국에서 장거리 결혼생활을 하는 우리 부부가 전화통화를 하고 나면 유튜브에 우리 대화 내용과 관련된 영상이 나온다. 아내에게 형이랑 회를 먹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유튜브에 기계가 양식 광어를 회 떠서 포장까지 해주는 부산 광어회 공장 영상이 떴다. 이렇게 엿들을 거면 차라리, 전화할 때마다 매일 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아내가 내 앞에 나오게 해 줬으면 좋겠다.



구글은 내 얘길 엿듣지만, 신은 내 기도를 듣는다. 아내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정말 보고 싶다. 생각하고 말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니, 본지 한 달 만에 시애틀 공항에 아내가 나타났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가 현금이 가득 찬 캐리어를 들고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할걸.






나는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한다. 제일 좋은 마트는 아내와 함께 가는 마트다.


아내와 한국 마트에 갔는데 냉동코너에 영상에서 봤던 그 부산 광어회 공장 광어회가 보였다. 순간 흠칫 놀라 주위를 둘러본다. 구글이 이제 한국마트에도 연결되어 있단 말인가. 심지어 가격도 파격할인. 세일하는 건 안 사고 못 버티는 내 취향까지 알고 있다.


아내에게 이거 먹고 싶다는 시선을 보냈다. 아내는 왠 냉동회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영상에서 들은 대로 공장에서 포장된 회는 사람 손을 덜 거쳐 신선회보다 더 위생적이라고 설파했다. 지금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 생각인가, 구글의 계략인가. 아내는 내 애처로운 눈빛에 넘어가 광어회를 카트에 담는 걸 허락해 줬다.






나는 소파에 누워 티브이를 보면서 여유롭게 쉬는 걸 좋아한다. 제일 재밌는 티브이는 아내와 함께 보는 티브이다.


아내가 집에 오니 티브이 앞이 풍성해졌다. 티브이를 보면서 오징어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그제는 티브이를 보면서 간밤에 냉장실에서 해동한 광어회를 먹었다. 아내는 작은 상에 접시에 예쁘게 옮겨 담은 광어회와 초장 그리고 와사비 간장을 내왔다. 상에는 나무젓가락 두 벌이 있었다. 아내는 음식에 예민해서 냉동광어회는 안 먹겠다고 했었는데, 그날은 광어회가 당겼던 것 같다.


광어회를 먹으면서 드라마를 한참 보고 있는데, 아내가 광어회를 한 점도 먹지 않은 게 눈에 들어왔다.


자기는 안 먹어?


응, 다 오빠 건데?


근데 왜 젓가락이 두 개야?


어느 젓가락이 회 먹기 더 편리할지 몰라서, 편한 걸로 먹으라고.


다시 보니 젓가락 한 벌은 끝이 뭉툭했고, 다른 한 벌은 끝이 더 뾰족했다. 아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나무젓가락을 사서 쓰고 있었는데, 아내는 내가 더 편한 젓가락으로 먹으라고 젓가락을 두 벌이나 챙겨 왔던 거였다.


나는 이날 알게 됐다.


나무젓가락이 이렇게나 감동적일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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