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챙 Mar 31. 2024

나태주 시인이 알려준 좋은 에세이를 쓰는 방법



지난 3개월, 세바시대학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 쓰기 수업을 들었다. 매번 온라인으로 약 2시간, 총 4번의 수업이 진행됐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 전, 나태주 시인은 학생들에게 마지막 질문 또는 소감을 물으셨다. 몇몇 학생의 마지막 질문/소감/감사인사가 이어진 후 약간의 정적이 흐르자, 세바시대학 조교님은 이제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하려는 듯 혹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분이 있느냐고 물었다. 망설이던 내가 말을 꺼냈다.


저, 폴챙이요.






나태주 시인의 시 수업에 대한 소감


저는 미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시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어려워서 시는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시는 쉽고 어렵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시 수업도 선생님의 시처럼 쉽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강의 내용도 유익했지만, (저도 선생님처럼 기독교인인데) 그저 교회 할아버지 혹은 사람 좋은 장로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밌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땐 에세이를 쓰는데, 선생님이 시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 중 에세이에 적용되는 것들도 많아 참 유익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알려준 좋은 에세이를 쓰는 방법


내가 에세이를 쓴다는 말을 들은 나태주 시인은 에세이를 쓰는 것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나태주 시인은 에세이집도 30권가량 썼다고 한다.) 다음 내용은 나태주 시인이 알려준 좋은 에세이를 쓰는 방법을 요약한 것이다. 나의 부족한 이해력과 표현력으로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태주 시인: 


시와 에세이는 그것들을 쓰는 작가의 정신상태가 다릅니다. 마음 바탕이 다릅니다. 시를 쓸 땐 마음을 격하게 갖지만, 에세이를 쓸 땐 될 수 있으면 마음을 평온하게 갖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세이를 쓸 땐 시를 쓰지 않습니다. 일부러 에세이모드에 들어갑니다.


에세이 쓰실 때 내가 쓰고자 하는 의도, 작가의 의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세이를 쓰다 보면 내 의도대로 가는 게 아니라 문장이 길을 트는 것을 느끼거나 알 때가 있습니다. 이걸 "문장의 길"이라고 합니다. 시작은 작가의 마음과 의도로 했지만 문장이 가다가 길을 내어주는 것이죠. 문장이 말도 붙여주고, 말을 끊기도, 이어주기도 합니다. 이걸 문심(文心), 문장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에세이를 쓸 땐 이 글을 독자가 어떻게 생각할까 배려해야 합니다. 나만 아는 단어,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아니라, 독자가 잘 지나갈 수 있도록, 탄탄하고 부드럽게 문장의 길을 잘 닦아야 합니다. 문장을 부드럽게 바꿔서 써야 합니다.


에세이는 오해가 없는 글입니다. 그래서 좋은 에세이는 바닥이 보이는 글입니다. 맑고 깨끗한 강물은 바닥이 들여다 보이듯, 에세이도 바닥이 보여야 합니다. 맑고 깨끗해야 합니다. 작가가 배고픈 이야기를 했다면 독자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배고픈 이야기를 썼는데세상을 향한 원망을 에세이에 담았는데, 독자가 그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독자도 작가와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바닥이 흐린 글입니다. 작가가 이 이야기를 했는데, 독자들이 읽고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그 에세이는 꽝입니다. 






나는 과연 내 바닥이 보이는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나태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에세이, 작가가 느낀 것을 독자도 글을 통해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글,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글.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마 속이 들여다 보이는 맑고 깨끗한 글을 쓰려면 나 먼저 내 속을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거다.


만약 내가 오늘 아내에게 화가 났다면 내가 진짜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혹시 화를 냈던 이유는 내 못남을 감추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타당한 이유가 없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더 목소리를 높인 것은 아닌지, 그저 자존심을 부린 것은 아닌지...


만일 솔직하게 내 마음 바닥까지 내려갈 용기가 있다 해도, 나는 과연 그런 내 바닥을 흐리지 않고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나의 마음 바닥이 에세이에 담기는 과정 중에 나 자신과 스스로 처한 상황을 포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진실을 말한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필요가 없다." 나는 과연 쓰고 나면 기억할 필요가 없는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가 무서울 땐 대통령처럼 글을 쓰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