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돈이 많지도, 돈을 많이 쓰지도 않지만, 어쩌다 보니 힐튼 호텔 다이아몬드 멤버가 되었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뭔가 혜택이 많은 것 같았다. 라운지 무료 이용, 아침 제공, 객실 업그레이드, 기타 등등.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지?
그럼 일단 호텔에 가보자!
초심자의 행운은 도박장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힐튼 호텔 다이아몬드 멤버 대우는 과연 어떨까?
일본 오사카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우리가 예약한 객실보다 좋은 객실이 남는다며 무료 객실 업그레이드를 해줬다. 다이아몬드 멤버라 특별히 무료 업그레이드 해주는 거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여니 탄성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뷰를 갖춘 객실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왠지 앞으로 집 놔두고 호텔 갈 일이 많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호텔을 더 다녀보니 다이아몬드 멤버라고 아무 때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사카에선 초심자의 행운이었던 건지, 언제 어딜 가던 항상 객실 업그레이드를 해주는 게 아니라 좋은 방에 돈을 내고 묵는 사람이 없으면, 좋은 방이 남으면 업그레이드를 해준다고 했다. 역시 자본주의에선 역시 돈이 왕이었다. 무료 객실 업그레이드를 받으려면 사람들이 호텔을 찾지 않는, 좋은 객실이 남을 것 같은 날을 골라 예약해야 했다.
그 후 또 호텔을 알아보던 어느 날, 난 이번에도 어떻게 하면 무료 업그레이드를 받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호텔에 많이 안 갈 것 같은 날은 언제일지 고심하고 있었다.
어? 이건 뭔가 좀 이상한데?
어느새 난 내 편의를 위해 호텔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호텔이 나를 대접해 줄 수 있도록 호텔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이게 무슨 다이아몬드 멤버야. 완전한 주객전도였다.
자본주의 호텔이 그런 건 당연하지
자본주의에서 호텔이 남는 방으로 충성고객에게 인심 쓰는 건 당연하다. 호텔은 어차피 남는 방으로 큰 손해 안 보고 인심 쓰고, 고객은 회원 혜택으로 무료로 업그레이드를 받으니 기분이 매우 좋다. 하지만 아무리 최상위 멤버라도, 돈을 더 낸 고객이 먼저다. 돈을 낸 고객보다 더 먼저는 호텔 주인이다.
멤버(member)라는 단어의 뜻부터가 단체를 구성하는 일원이다. 온리원(only one)이 아니라 일원. 그리고 일원 중에선 돈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이 넘버원이다.
일원이 아니라 온리원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
호텔에서 다이아몬드 멤버에게 남는 더 좋은 방이 없다고 업그레이드를 못해주는 건 괜찮다. 어차피 "혜택"일 뿐이었으니까.
근데 어쩔 땐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걸 안주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종종 항공사가 그런 일을 저지른다. 공항에 갔는데 좌석 개수보다 많은 예약을 받았다며 소정의 배상을 할 테니 자기 자리를 양보하고 다음 항공편에 탑승할 승객이 없는지를 묻는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럼 몇몇 승객은 애초부터 돈을 냈는데 앉을자리가 없었다는 거 아닌가. 팔 물건도 없는데 돈부터 받았다고? 내가 그 자리를 예약한 온리원이 아니었다고?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면 분통이 터지지만, 나도 가끔 이런 일을 저지르곤 한다.
당신은 가끔 온리원이 아니야
결혼 전, 우리 부부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적은 청첩장을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돌렸다. 내가 적은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영어로 적었었기에 의역이다):
저희는 이제 저희가 믿는 성경에 따라 결혼 서약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남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제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것은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가 생명을 내어 주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셨고, 교회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도 제 아내에게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고 항상 함께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난, 가끔 아내 곁에 있어주기는커녕 아내가 나를 가장 필요해할 때 아내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아내에게 대화가 필요할 때, 내가 왜 화났는지 설명이 필요할 때,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기는커녕 아내가 죽을 만큼 아프게 만든다. 난 때로 바늘에 찔려도 피도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아내에게 차갑게 대한다. 그건 아마 내 마음이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좁아서 그럴 거다.
내 아내는 내 마음에 빈 방이 없다고 업그레이드를 해주지 않아도 되는 다이아몬드 멤버 따위가 아니라, 있는 손님이라도 내쫓고 마음을 내주어야 할 호텔 주인인데 말이다. 그리고 대개 내 마음속 스위트룸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내 알량한 자존심이다.
해가 쨍쨍한 날이 아깝지 않게
얼마 전 아내와 다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혼자 운동을 하러 나갔다. 근데 맨날 비만 오던 시애틀 하늘이 왜 그날따라 그리도 맑던지. 그런 날 아내와 함께 햇살 아래를 걷지 못하게 만든 내 좁아터진 마음이 너무 싫었다.
이제 다신 그날처럼 시애틀 햇살이 아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아내가 기쁘게 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맨날 말만 하지 말고 성질이 나려 할 때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