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숫자를 셀 때 열, 스물, 서른, 마흔, 쉰까지는 쉽다. 그런데 육십부터가 문제다.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온
한참을 생각해야 60은 예순이고, 90은 아흔이라는 게 떠오른다. 100이 "온"이라는 건 아예 생각이 안 날 때도 있다. 이리 온, 내 기억력.
예순부터 잘 떠오르지 않는 건 아마 자주 사용을 안 해서 일 거다. 내 주변 사람은 아직 쉰을 잘 넘기지 않으니까. 예순부터는 부모님과 할머니 연세를 말할 때만 쓰니 잘 기억이 날 리가 있나.
뒷부분이 생각나지 않는 건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셀 때도 비슷하다.
돈 벌기, 무거운 것 들어주기, 집안에 망가진 것 고치기, 스킨십
남편이 몸으로 해야 하는 것들은 당연하게 떠오르는데 정서적이고 마음에 관련된 건 잘 떠오르질 않는다.
대화, 세심함, 배려, 이해, 격려, 감사, 매너, 약속 지키기
아마 이것들이 남편인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자주 까먹는 이유는 내가 자주 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세심한 대화라던지, 매너 있는 배려라는 걸 도통하질 않으니 남편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기억이 날 리가 있나.
아내가 이 단어들을 다른 집 남편들을 묘사할 때만 쓰이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자주 떠올리고 실천해야겠다. 내 나이 예순이 되면, 예순 이후의 숫자들과 함께 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