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할까 싶어서

by Paul
이 길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Paul 제공

우여곡절 끝에 인턴이 끝났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만류가 있었다. 경제지 인턴이 됐다는 기쁜 소식을 학과장 교수에게 전했을 때 "나이도 있는데 졸업이 먼저 아닐까"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당시에 나는 이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다.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깐. 결과론적으로 인턴이 발판이 되어 지금 기자를 하고 있으니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온 나는 학업을 하루 빨리 마쳐야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공고가 언제 또 날지 모르니 대졸자 신분은 절실했다. 20대 후반인데 아직 4학년이라니. 물론 후회하지 않을 만큼 가득 채운 나날들이었지만 조급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복학하고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수십번씩 취업 사이트를 드나들었다. 혹시나 있을 기회를 잡으려고 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려다가 인턴을 했던 무모함을 두번이라고 발휘하지 못할까 싶었다. 특히 대기업, 공공기관 등 다른 공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미디어 탭에 있는 언론사 공고만 줄줄이 봤다. 이왕 시작했으니 한번은 더 내 길로 삼을 만한 도전을 해도 될 것 같았다.


한 종합 일간지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5대 일간지 안에 드는 아주 유력한 언론사. 황당하게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는 해당 공고가 올라오지 않았었다. (이 카페는 여전히 지면 기자만 선호하며 공채가 아니면 관심이 없다). 난 정통적으로 언론고시를 준비하지 않았고 지면에 큰 욕심이 없었다. 물론 기자라면 특유의 냄새가 나는 신문에 어려운 단어 가득한 기사를 본인 바이라인으로 찍히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언론사들도 이를 인지했으나 광고 때문에 지면을 버리지 못한다는 웃픈 소리를 암암리에 늘어놓고 있다. 꼭 고속도로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갈 필요 있을까 싶었다. 국도로 가서 느리더라도 그만큼 알찬 경험이 가득해져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망설이지 않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내가 정부기관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할 때 기자 출신 총리와 오찬을 가진 바 있다. 이 총리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우리에게(난 이때 사회공헌 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신신당부를 했다. 연예부는 기자라고 볼 수 없으며 되도록 가지 말아야 한다고. 사실 이 말이 지원하는 순간 떠오르기도 했다.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정치부, 사회부가 꽃이라고 여겨지는 현 흐름에서 그 총리의 말은 뼈를 강타하는 때림이었다는 걸 부정하지 못한다. 아무렴 어떠랴. 쉬는 날이면 TV와 유튜브를 붙들고 살았는데 재밌게 일할 수 있겠지 싶었다. 혹시 아는가, 생각치도 못한 이곳에서 썰을 풀만한 족적을 남길지. 쫄지 말자 다짐하고 다짐했다.


서류합격은 인턴의 경험으로 꽤 쉽게 이뤄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장에 갔는데 아뿔싸 고수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들에게 분위기를 압도당했다.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면접관을 마주했다. 국장, 데스크를 포함한 6명의 기자들이 아주 심오한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잘 대응했다. 문제는 학력이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란 질문이 어김없이 들어왔던 것. 나는 아주 큰 목소리로 "이제 곧 1학기가 마치고 코로나19로 인터넷 강의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2학기는 취업계를 제출하면 됩니다"라고 답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던 터라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졸업장을 쥐고 있지 않던 내가 일에 집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을 것이다. 여기서 뽑히지 못한다면 난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겠지만 왠지 그냥 오묘한 편안함이 들었다.


약 1주일이 지났다. 불안함이 커졌다. 결과는 곧장 나오던데, 집에 가만히 있으니 째깍째깍 시계 소리는 내 속을 박박 긁었다. 반 포기 상태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전에 걸려온 적 없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다음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라고 말이다. 이렇게 난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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