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다. 소위 언론고시를 단 한번도 준비하지 않고 인턴을 시작했을 때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속보국에서는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속보를 작성했기에 '우라까이'가 많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통신사를 비롯한 유력매체에서 내용을 참고해(?) 기사를 완성하면 됐다. 그런데 이슈팀으로 넘어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발제부터 기사까지 모든 걸 내가 해내야 했다. 단순히 글쓰는 일을 하고 싶어서 덤볐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용감하면서도 무모했다.
이슈팀 데스크는 지면 기자 출신이었다. 이분의 이력을 검색해보면 정말 화려했다. 당연히 인턴기자라고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아기들의 글솜씨는 눈에 들어차지 않았을 터. 여담이지만 그렇게 데스크를 보면 모두 상처만 받는다는 쪽지를 남기고 떠난 인턴도 종종 있었다. 어쨌든, 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슈팀으로 가서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무거웠다. 보통 하루에 2개의 기사를 썼는데 데스킹이 이뤄질때면 어김없이 'ㅇㅇ씨 잠깐만'이란 불호령이 떨어졌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편집국에서 내 글이 왜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는 그 시간은 다 큰 성인이지만 부모님 뒤에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을 누가 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인턴이 끝날때까지 '이만하면 됐다'는 칭찬을 듣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는 정말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 기사를 작성했는데 말이다. '회사 이름으로 나가는건데 잘 해야지'란 말에 합당할 정도의 노력은 대체 무엇이었나 당시엔 끝도 없이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즐거움과는 별개로 큰 행복을 느끼진 못했다. 쌓여가는 핀잔에 나도 오기가 생겼다. 결코 내가 그냥 글을 썼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부지런함'이었다. 9시가 출근시간이었는데 난 항상 8시 30분 이전에 출근을 해서 앉아있었다. 자신보다 일찍 출근하는 걸 본 데스크는 '벌써 나왔단 말이야?'란 얼굴로 흠칫흠칫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뭐 이 소소한 증명 덕분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 '딜'이 적어졌다. 사실 점심시간에 펜기자 인턴들끼리 둘러앉아 분노의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직장인들이 카페에 몰려있는 이유와 근속을 할 수 있는 발판이 여기서 나오는구나 일찌감치 느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인턴 동기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이후 일간지에서 본격 근무를 시작했을 때 '확실히 ㅇㅇ경제지 출신이라 기사를 잘쓰네'란 말을 종종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혹독하게 대했던 이슈팀 데스크가 떠올랐다. 기사에 '기'자도 몰랐던 나를 멱살잡고 성장시켜줬던 건 어쩌면 연륜 깊은 그 데스크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다. 자의든 타의든 인턴 경험 덕분에 한단계 발전할 수 있었으니까.
최근 건너건너 들려오는 이야기로 내가 있던 이슈팀이 해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데스크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애써 바이라인을 검색해보지도 않았다. 어딘가에서 더 좋은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된 기사를 위해 고민하고 계시겠지 어렴풋이 추측해본다. 언젠가 현장에서 마주친다면 참 좋은 스승이자 선배가 되어주셨다고 말을 건네고 싶다. 대충 쓰는 후배가 되지 않길 바라셨던 깊은 소망을 이제는 알 것 같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