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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03. 2022

잃어버린 즐거움을 찾아서

듁스 원두로 커피를 팔던 시드니 한 카페는 컵홀더를 주지 않아 당황했었다. Paul 제공

작년까지만 해도, 더 멀리 가서 차가 없던 시절인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좋은 카페를 가기 위해 온갖 대중교통을 섭렵했었다. 경기도 아래 거주하고 있었지만 굳이 경기도 위 끝을 탐방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울에 가보지 않은 카페는 없을 정도였다. 물론 각종 SNS를 보면 가보지 않은 곳들이 수두룩하지만 내 기준을 채워주는 카페들은 그렇단 말이다. 그 가운데 마음을 사로잡으면 N회차 방문을 이어갔다.


즐겨찾는 동네는 한남동이었다. 한남동 첫 카페 입성은 호주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함께 방문했던 BNHR이었다. 성수동 카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BNHRER가 아니다. 한적하면서도 로고 스티커 품절 대란을 일으켰던 그 시절 카페를 알아야 성수가 뿌듯해질 것이다. 어쨌든 이를 시작으로 한남동에 숨어있는 카페들을 찾아나섰다. 호주 원두가 방문하려는 목적의 첫번째였고 다음으로 한적함, 여유로움을 쫓았다. 얼마나 많이 다녔던지 한 친구는 "한남동 들어오니 내비를 꺼버리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연남동도 곳곳을 다녔다. 거리를 시작하는 초입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살고 있는 동네와 맞닿은 곳의 카페도 갔었다. 주로 연남동 끝자락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전동킥보드를 타지 않는 이상 꽤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해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좋았다. 성수동도 지도를 보지 않고 가는 곳 중 하나다. 최근엔 신상 카페들이 잇따라 들어서며 가본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아졌다. 그래도 뚝심 있게 최애 카페들을 돌려막기로 방문 중이다. 하여튼 자부심을 가장한 자존심이 세다.


지난해 말 이직했을 때 입사 동기들과 처음 진행한 일은 카페 발굴이었다. 회사를 자주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한번씩 들어오면 여러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은신처가 필요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지금은 꼬박 다섯손가락이 넘는 리스트를 생성했다. 물론 테이커웨이(Take away) 전용 카페도 꿰찼다. 법인카드로 결제하면 돼 가격은 상관없지만 이 전용 카페들은 저렴한 값에도 맛을 포기하지 않은 곳들이다. 이때문에 특정 시간대에는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한다.


이게 그냥 낙이었다. 모르는 지역을 가면 맛집보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찾는 데 시간을 훨씬 많이 소비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생각해보니 즐거움이 컸던 것 같다. 과거라고 표현하기는 머쓱하나 당시에는 별다를 것 없어도 행복을 말할 수 있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냐고 반문하면 그건 아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순수함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랄까. 이같은 원동력을 주는 근간은 따로 있긴 했다. 연료와도 같았는데 '앵꼬'가 나 채울 수 없게 됐다. 파장은 컸는데 불과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지 못했다. 낼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게 맞다.


올해 어떤 때보다 안정감 있는 시기를 보냈어야 했다. 몇번의 이직으로 당분간 이력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에 정착했기에 그렇다. 당연히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건데 업무 환경이 나를 너무 지치게 했다. 벽을 한 번 치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도 쳐봤으나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버티고 있었다. 연초부터 시작해 지난달에야 비로소 어려움이 사라지게 됐다. 그래도 이탈하지 않고 잘 버텼다 생각하며 터널을 나왔는데 저 멀리 보이는 카페들에 나아갈 상태가 되지 못했다. 앵꼬였으니까.


타박을 보낸다면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수용하려 한다. 미리 준비해뒀어야 했는데 잘 살피지 못해 채울 기회를 지나쳐버린 내 탓이 큰 걸 알기 때문이다. 비축해둔 연료가 있었다면 여전히 터널 속이라도 조금 다른 대안으로 감내했을까 싶다. 어차피 바뀌지 않으니 부질 없는 후회에 속하겠으나 한편으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갈 수도 있다. 그냥 내뱉으면 사라지는 '만약에'다. 이렇게도 적어놓으면 같은 실수를 줄이는 데 미약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한다. 이제 갓 출시된 휴대전화의 케이스가 동시에 출시되는 것과 같은 의미다. 깨지는 게 두려워 잇따라 구매행렬이 계속되지만 그 가운데는 튼튼한 손을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과연 비교 대상이 될까 싶지만 앵꼬가 난 내 통을 아직 어딘가 들어가지 못한 연료 앞으로 가져가고 싶다. 너무 오래돼 유통기한 다 한줄 알았겠지만 사실은 시간을 거치며 새것이 자랑할 수 없는 견고함을 얻게 됐단 걸 깨닫는다면 말이다. 올해가 사라지기 전에 족적을 남기지 못한 즐거움들을 '만땅'으로 출발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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