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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02. 2022

그보다 더 얹을 수 있기를

가장 귀중한 시간을 함께한 이는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법이다. Paul 제공

진정 원하는 꿈을 함께 이뤄갈 수 있는 조력자가 있다면 그 삶은 참 행복하다 증언하지 않을까. 이 과정은 때때로 일방적인 헌신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닌 상대가 쥔 시간을 기꺼이 공유해줬다면 강산이 변해도 앞으로 발 맞춰 나아가는 게 당연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내가 꿈을 이뤄온 과거를 돌아보면 그랬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이외에는 딱히 특출난 게 없는 나를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존재했던 것이다.


어학연수 시절 론칭한 블로그 기반 취재팀을 개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동안 진행하던 콘텐츠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전공도 아닌 내가 무슨 수로 로고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새로 시도하는 콘텐츠들이 눈에 잘 들어오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도 필요했다. 이 시기에 함께한 조력자는 천안 시골 구석에 있는 카페에서 노트북 하나를 펴놓고 머리를 맞대줬다. 까탈스럽게 구는데도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개편을 함께 했고 바뀐 로고 스티커를 뽑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팀은 다시 날개를 달았다.


인턴을 할 때는 한 대기업 사회공헌추진팀 활동으로 알게 된 친구가 많은 도움을 줬다. 사회공헌추진팀 활동이 종료됐지만 그로부터 파생하는 갖가지 활동들을 함께 참여했었다. 행사 준비나 회의로 만나야 할 때면 대학생이던 그 친구는 인턴으로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앞까지 매번 와줬다. 주최자인 대기업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수 있는 거리였으나 친구의 집에서는 꽤 먼 거리였다. 하루는 지쳤는지 업무를 마치고 로비로 내려가니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두가지 일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는데 한 공동체로 배려를 해준 덕분에 모든 토끼를 잡은 바 있다.


취업 준비 기간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후배가 면접 현장을 찾아와 힘을 전달해줬었다. 마음을 먹으면 일단 행동으로 실천하고 보는 성격이나 막상 그로 인해 판이 깔리게 되면 순간 멈칫하곤 한다. 이런 나를 두고 후배는 별다른 조언의 말을 건네주지는 않았다. 그저 방문한 현장에서 내가 면접에 들어갈 때까지 곁을 지켜줬다. 면접을 다녀온 뒤 수다스럽게 내용을 복기하면 또 묵묵히 들어줬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나아갈 때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시기가 그랬다. 후배 강의 과제로 리포팅 촬영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화면 속 그의 모습은 여느 기자와 다르지 않았다. 다른 진로로 간 후배가 만약 한 필드에서 만나게 됐다면 어땠을까.


첫 단독을 썼을 때다. 기자로서 할 일을 한 것이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생이 쉽지 않게 변했기에 그랬다. 기가 죽어 낙심한 얼굴을 보이는 내게 언론사 인턴을 하던 친구는 이런 말을 해줬다. 기사를 통해 한명이라도 무언가의 다짐을 하게 된다면 그걸로 성공한 것 아니겠냐고. 이 짧은 말은 지금까지도 부지런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원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괜찮다며 금방 이 시기는 지나간다는 상투적인 말도 당시에는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지 모른다. 이런류의 문장을 모두 제쳐두고 진심으로 고민해 내뱉은 저 말, 그 친구가 훗날 최종적으로 원하는 일을 하게 됐을 때 꼭 전해주고 싶다.


오늘날 명분 없는 헌신은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굳이'란 단어를 앞세워 나누지 말고 내것을 좀 더 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모교 특강을 마친 뒤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의 메일이 잇따라 들어오는데 위에서 언급한 시간들이 스쳐갔다. 분명 귀찮고 애써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한다고 해 내가 얻는 이점도 딱히 없다. 그럼에도 열심을 내는 이유는 도움을 받은 자란 사실이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내어 주겠다 저들의 도움을 통해 다짐했으니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언급된 벗들이 몰입하고 싶은 것을 쟁취하려는 순간을 그들이 그랬듯 그보다 더 얹어 같이 꾸려가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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