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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07. 2022

조명된 반쪽 현실 앞에서

입직하고 첫 출근날 선배가 주셨던 수첩에 적혀있던 문구가 꽤 좋아보여 사진으로 남겨뒀던 바 있다. Paul 제공

지난 주말부터 제11호 태풍 '힌남노' 북상으로 전국이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최근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가 컸고 태풍 '매미'와 세력이 비슷하다고 예측돼 더욱 그랬다. 지난 폭우로 이미 피해를 입었던 곳들은 또 피해를 입을까 단단히 대비를 했다. 태풍과 최근접 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들 역시 피해 예방을 위한 각종 방안을 마련하기 바빴다.


지난 5일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졌고 태풍 경로가 일부 수정돼 더 많은 피해가 예측되면서 곳곳에선 걱정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고 당초 예상했던 것 만큼 수도권 지역에 타격은 없었다. 이 곳에 거주하는 나를 비롯한 지인들은 마음을 쓸어내렸으나 지방은 사정이 달랐다. 특히 경상 지역은 인명 피해가 컸다. 대비를 했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풍이 다가오기 시작했을 즈음에 우리 회사는 비상을 걸고 모든 부서가 특보 형식 보도를 이어갔다. 태풍이 지나간 오늘도 피해 상황을 다양하게 조명하며 발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가 이어질 때 대개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주 인용되고는 한다. 이론적 현상보다 겪은이의 말이 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피해가 컸던 지역 거주자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루 종일 기자들 전화를 받았다던 그는 별안간 울분을 터뜨렸다.


내용은 이랬다. 한 지역에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쏟아져 모든 곳이 침수됐다. 당연히 전기와 수도는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명피해 규모가 달랐는데 언론에서는 피해 규모가 더 큰 쪽 보도를 이어갔더란다.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며 여야 정치인 할 것 없이 현장을 방문해 각종 지원책을 남발하고 갔다고 했다. 결국 반대쪽은 오늘 응급비상전원 작업이 결정됐다. 이재민 대피소가 없어 사비들 들여 잠자리를 해결해야 하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물론 여기서 피해의 정도를 따지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또 사람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자연스럽게 언급하기 마련이다. 다만 이 인터뷰로 또 다시 느낀 건 해결 과정의 차이다. 얼마나 관심이 쏠리느냐 아니냐 여부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혹자는 선택과 집중이란 단어를 꺼내들 수 있지만 정말 그럴까 싶었다. 앞서 말했듯 정도의 경중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기에 그렇다.


나 역시 이것에 자유롭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공평하려면 태풍 피해를 입은 모든 지역민들과 대담을 나눠야 했다. 지난주 모교 후배들을 찾아 "보도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란 문장을 말한 바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개인 사업자가 아닌 회사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보도 유무를 내가 결정하지 못한다고 해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없다. 어쨌든 전해야 할 사안을 바꿔 말하면 '듣고 싶은 부분만 잘라'란 의미가 변하진 않으니 말이다. 정치인도, 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힌남노가 상륙했는지도 모르게 뉴스들은 전혀 다른 주제의 보도를 이어갈 것이다. 정치도 사회도 채 다하지 못했던 쟁점들을 놓고 격론을 벌이겠지. 그리고 삶의 터전 복구를 위한 시간들이 끝을 모르고 소비되어 가겠으나 머잖아 잊혀진 하나의 이야기로만 자리잡게 될 예정이다. 흔히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킬하자'란 말을 듣게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니즈에 국한된 결정에 불과하다. 나와 동료들은 오늘날, 세밀하게는 반복되는 이같은 현상 속에서 어떤 걸 붙잡고 나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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