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제11호 태풍 '힌남노' 북상으로 전국이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최근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가 컸고 태풍 '매미'와 세력이 비슷하다고 예측돼 더욱 그랬다. 지난 폭우로 이미 피해를 입었던 곳들은 또 피해를 입을까 단단히 대비를 했다. 태풍과 최근접 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들 역시 피해 예방을 위한 각종 방안을 마련하기 바빴다.
지난 5일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쏟아졌고 태풍 경로가 일부 수정돼 더 많은 피해가 예측되면서 곳곳에선 걱정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다음날이 됐고 당초 예상했던 것 만큼 수도권 지역에 타격은 없었다. 이 곳에 거주하는 나를 비롯한 지인들은 마음을 쓸어내렸으나 지방은 사정이 달랐다. 특히 경상 지역은 인명 피해가 컸다. 대비를 했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풍이 다가오기 시작했을 즈음에 우리 회사는 비상을 걸고 모든 부서가 특보 형식 보도를 이어갔다. 태풍이 지나간 오늘도 피해 상황을 다양하게 조명하며 발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같은 보도가 이어질 때 대개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주 인용되고는 한다. 이론적 현상보다 겪은이의 말이 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피해가 컸던 지역 거주자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루 종일 기자들 전화를 받았다던 그는 별안간 울분을 터뜨렸다.
내용은 이랬다. 한 지역에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쏟아져 모든 곳이 침수됐다. 당연히 전기와 수도는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명피해 규모가 달랐는데 언론에서는 피해 규모가 더 큰 쪽 보도를 이어갔더란다. 전국적 관심이 집중되며 여야 정치인 할 것 없이 현장을 방문해 각종 지원책을 남발하고 갔다고 했다. 결국 반대쪽은 오늘 응급비상전원 작업이 결정됐다. 이재민 대피소가 없어 사비들 들여 잠자리를 해결해야 하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물론 여기서 피해의 정도를 따지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또 사람은 내게 유리한 쪽으로 자연스럽게 언급하기 마련이다. 다만 이 인터뷰로 또 다시 느낀 건 해결 과정의 차이다. 얼마나 관심이 쏠리느냐 아니냐 여부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혹자는 선택과 집중이란 단어를 꺼내들 수 있지만 정말 그럴까 싶었다. 앞서 말했듯 정도의 경중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기에 그렇다.
나 역시 이것에 자유롭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공평하려면 태풍 피해를 입은 모든 지역민들과 대담을 나눠야 했다. 지난주 모교 후배들을 찾아 "보도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란 문장을 말한 바 있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개인 사업자가 아닌 회사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보도 유무를 내가 결정하지 못한다고 해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없다. 어쨌든 전해야 할 사안을 바꿔 말하면 '듣고 싶은 부분만 잘라'란 의미가 변하진 않으니 말이다. 정치인도, 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에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힌남노가 상륙했는지도 모르게 뉴스들은 전혀 다른 주제의 보도를 이어갈 것이다. 정치도 사회도 채 다하지 못했던 쟁점들을 놓고 격론을 벌이겠지. 그리고 삶의 터전 복구를 위한 시간들이 끝을 모르고 소비되어 가겠으나 머잖아 잊혀진 하나의 이야기로만 자리잡게 될 예정이다. 흔히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킬하자'란 말을 듣게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니즈에 국한된 결정에 불과하다. 나와 동료들은 오늘날, 세밀하게는 반복되는 이같은 현상 속에서 어떤 걸 붙잡고 나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