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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10. 2022

어느날 하게 된 이런저런 생각들

어학연수 시절 어디라도 가기 위해 저 조그마한 노선도를 매일 들여다 봤다. Paul 제공

군 복무를 하던 시절 글쓰기란 도구는 확정을 했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일단 이 도구를 찾는 것도 한평생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축복이라면 축복이지만. 이왕 찾게 됐는데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멋드러지게 사용하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당장 눈앞에 있는 군대 역시 전역이 한참 남았던 터라 별다른 도전을 꿈꿀 순 없었다. 얼마간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예상보다 일찍 휴가를 나가게 됐는데 무릎을 탁 치는 경험을 했더란다.


재수를 하면서 정말 가고 싶은 대학교가 있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그 대학교를 설립할 당시보다 현재는 또 다른 세상이 됐지만 어쨌든 그곳에 입학하면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내가 무얼 하게될 지 모르지만 그냥 가기만 하면 이 모든 고민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이런 뽕(?)을 심어준 학교 홍보 영상이 있었는데 여기에 출연한 졸업생이 특히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우유곽 대학을 설립했다는 청년이었는데 우유곽에 적어둔 세계 유수 인사를 학교 졸업 후 모두 만났다는 말이 꽤나 멋있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 대학교를 가진 못했다. 지금 모습을 생각한다면 다른 대학교를 간 게 더 잘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단 안도감이 들긴 한다. 이럴 때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 싶은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 무릎을 두드렸던 경험을 말해보려 한다. 언제 한 번 저 청년을 만났으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고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홍보 영상을 몇번이나 돌려봤기 때문이다. 똑같이는 살 수 없지만 비슷한 일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풀리지 않는 문제를 지니고 있다면 때론 모방이 물꼬를 터주기도 하니까.


이 청년은 대단한 일을 하지도, 그렇다고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개 사회공헌사업이라고 하면 일방적 원조에 따른 결과물을 얻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이 청년은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해주지 않고 집을 어떻게 짓는지 알려줬다. 전 세계 건축가들을 모아서 말이다. 누군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면 전 세계 미술가들을 모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지역으로 떠났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것을 취득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려주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당장 구체화 된 건 아니지만 내가 직업을 가지면 궁극적으로 이런 일을 해야지 다짐했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이같은 부류의 비전을 애써 까먹으며 살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기업 계열사 재단 채용이 있는지 여부를 들춰보는 게 언급한 다짐의 연속이라면 연속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가치란 틀을 유지하고는 싶은데 보여지는 것이 꽤나 멋있는 고급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성공한 점프’를 시도하려했음을 고백한다. 이왕 하는 거 대감집에서 하면 명분도 챙기면서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최고의 결과물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맨땅에 헤딩은 정말 이상에서만 박수 받는 무모한 장난에 불과한 것 아닌가.


까먹으려고 했던 이 일화를 떠올리게 해준 건 따분한 일의 연속이던 이번주 어느날이었다. 아주 지루한 표정으로 유튜브에 올라온 여러 동영상을 탐색하던 가운데 미국 실리콘밸리에 몸담고 있는 한국인들을 인터뷰하는 채널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한 번 봤던 것인데 내가 최근에 접한 건 세계 최대 포털 사이트 야후에서 책임자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다. 동료들은 페이스북, 우버 등 현재 세상을 주름잡는 기업의 초창기 때 줄지어 넘어갔고 자신에게도 오퍼가 왔지만 당장 안락함이 좋아 남아 있었단다. 통장에 찍히던 높은 급여를 포기할 수 없어서였는데 야후가 망한 뒤 비로소 정신을 차렸단다.


내가 예시로 언급한 건 동영상에 등장한 극히 일부 사례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요지는 뭐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갖가지 도전을 할 수 있는 젊을 때 현실과 타협한 뒤 안타까웠고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발벗고 도전을 잇따라 했더니 그래도 값지더라. 막힘 없이 이같은 말을 내뱉는 그의 표정에서 사뭇 진지한 모습이 보였다. 비로소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본인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떨거나 쫄지 않는다. 자신감만 넘칠 뿐인데 이것은 자만심과 확연히 다른 에너지를 표출한다. 그가 그랬다. 분명 은퇴를 앞두고 있을 나이인데 이제 막 서른으로 접어드는 나보다 훨씬 생기있어 보였다. 꿈 있는 자 같았다.


이후 다음 추천 영상으로 피드에 뜬 내용은 한 미국 배우의 아이비리그 졸업 연사였다. 그는 축사를 할 당시 아프리카를 다녀온 직후라며 "세상이 당신들의 재능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배우의 말이 끝나자 연단 앞에 앉아 있던 졸업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다만 얼굴 표정은 '그래서 내가 무슨 상관인가'란 생각이 지배하는 듯 했다. 이들이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 뒤 좋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누군가를, 특히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있겠는가. '애석하게도' '안타깝지만' 등 단어를 말머리 맨 앞에 붙이면 책임은 상쇄되기 마련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뒤 서른을 갓 넘길 즈음에 과연 이렇게 쭉 살아가면 되는지 많은 고민을 한다고 한다. 혹자는 너무 당연한 고민이지만 다들 똑같으니 무게를 두지 말고 살아지는 대로 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헉헉거리며 사는 현실인데 복잡할 게 뭐 있나 싶어 주어진 현실 가운데 작은 감사들을 쫓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맞는 말이다. 유난을 떤다고 해 보기에만 멋있을 뿐 얼마나 내실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는 냉정한 현실에 반드시 곱씹어야 할 중요 포인트다.


또 고백을 하자면 빛 좋은 명패를 달고 사는 현재가 썩 즐겁지는 않다. 받은 복을 세어볼 줄 모른다는 쓴소리도 들은 바 있어 나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모습이 되기까지를 되짚어 본다. 인턴으로 시작해 정규직이 되기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으니 이 정도면 정년을 채우기 전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는 건 옳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빨리 다음 단계라고 하는 결혼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드디어 2주 뒤 긴 연차가 다가옴에도 해외로 훌쩍 떠나길 망설이고 있는 내 모습이 맞는 건가 고민이 든다. '그냥 일 벌리지 말자'는 두려움이 내재화됐다는 게 싫은 건지,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지 이 사례들을 종합해 일단은 정리에 빠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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