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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Oct 01. 2022

쏜살같이 지나간 30년

젊은 시절이 있었을 그들의 꿈은 뭐였을까 케이크를 보며 잡다한 생각이 스쳐간다. Paul 제공

TV 드라마에서 볼법한 이야기를 종종 전해들은 바 있다. 결혼식을 올렸던 직후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 단칸방 비슷한 곳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물론 신혼여행은 국내 어딘가였다. 이듬해 같은 교회 장로님의 도움을 받아 매우 저렴한 월세에 방 2칸짜리 집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아버지께서 꾸준히 넣어오신 청약이 당첨되며 지금 동네로 이사오게 됐다.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가족들 줄줄이 차에 타 이사오게 될 높은 층수를 머리 위로 올려다 보던 때가 여전히 생생하다. 벌써 꽤 오랜 과거라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이른 바 메이커 신발을 신어보지 못했다. 물론 내가 관심이 없었던 터라 부모님께 요구한 적 없지만 다 커서 보니 '그때 신지 않았었네' 깨달았다. 대신 내가 꿈꿀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기억에 남는 큼지막한 일화가 있다면 PMP가 필요하던 아들에 덜 쓴 출장비를 모아 사주셨던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땐 꼬박 3년을 매 주말 왔다갔다 하셨다. 특히 작정하고 놀았던 고3 시절엔 혹여나 배고플 아들을 위해 간식을 잇따라 챙겨 도서관을 방문하시기도 했다.


군대 가기 직전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가라며 유럽 패키지를 보내주셨다. 물론 이때 당시 어머니는 해외를 나가보지 못하셨다. 전역을 앞뒀을 즈음엔 인생이 변화할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끝내 마다하는 날 붙잡고 제발 나가라 보채셨다. 당연히 가난한 유학생에게 돈이 있을리 만무했고 자립하기 전까지 갖가지 지원을 이어주셨다. 그결과 꿈을 찾아가는데 꼭 필요한 경험을 얻고 귀국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어딘가에서 나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귀한 시간이다.


분명 우리 것을 챙기기에도 부족한데 부모님은 나눌 수 있다면 아끼지 않으셨다. 일례로 명절이 되면 만만치 않은 가격의 과일, 공산품 따위를 감사하고 싶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신다.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상호' 아니겠는가. 이상하게도 부모님의 베품은 매번 '일방적'이었다. 어린 마음에 "왜 이렇게까지"라며 불평도 해봤는데 얼마 전 할머니 장례식 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찾아온 마음은 단지 과일값으로 등가될 되지 못한다는 걸 말이다.


이같이 너무나 당연한 걸 복기할 수 있을 나이가 되니 어느새 부모님의 머리카락은 검정보다 흰색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와 동생보다 자꾸 작아지신다. 이에 나도 아버지처럼 언젠가 큰 이별을 마주하겠구나 싶었고 이 순리가 싫어졌다. 참 길다고 느껴졌던 하루하루가 이제는 1년 단위도 금방 지나간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걸 새삼 인지하게 되면 더 그렇다. 당연하다는 안심이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제일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적은 없었다. 다만 최근 들어 낮 부끄러울 정도로 늘어난 부모님의 자식 자랑을 전해들으며 20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스스로가 조금 자랑스럽긴 하다. 한평생 당신들을 위해서가 아닌 아들과 딸을 위해 모든 헌신을 쏟으셨는데 고작 '자랑' 정도로 만족하시는 게 더 생각해보니 달갑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30주년이라고 받으신 얼굴 케이크보다 더 많은 걸 요구할 권리가 충분하니까 말이다. 누가 만들었을지 모르는 단어 '영원', 슬프게도 손에 완전히 쥘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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