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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Oct 08. 2022

날라온 홈커밍 초대장

이 메일을 작성하기 위해 후배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었다. Paul 제공

얼마 전 졸업한 대학교 학과 사무실로부터 메일 한통을 받았다. 코로나19로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동문회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조교가 송부한 장문의 메일이었는데 글 가운데 진심이 묻어나고 있었다. 원로 교수님을 비롯해 현재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님들,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게 계획의 일환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늦게 졸업한 후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같은 연락을 받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최근 이런 종류의 자리 참석 요청이 있으면 거절하지 않고 가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매일 똑같은 직군의 사람들만 봐 만남의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싸의 성격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앞날을 모르는 한 인간으로서 잘 갖춰진 인프라가 내게 귀한 자원이 되지 않겠나 싶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더욱이 생판 모르는 이들이 있는 곳도 아닌 졸업한 모교 학과 행사라니 당연히 참석을 마다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참석 확인을 위한 문자 전송을 망설이고 있는 날 발견했다.


나는 학과에서 이방인이었다. 대개 예술대학은 고등학교나 혹은 그 이전부터 오랜 기간 원하는 분야를 준비해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나. 우리 학과도 그랬고 대단한 입시를 치르고 들어온 학과 구성원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었다. 반면 나는 일반학과에서 전과 시즌에 맞춰 창작 수필이란 비교적 간단한 시험을 거쳐 들어왔다. 혹자는 들인 노력에 비해 쉽게 신분을 바꿨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학생들이 있었다. 문학 강의에서 만난 한살 어린 동생이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으나 졸업하기 전까지 꽤나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문예창작과는 인생에서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전공이었다. 꿈을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무렵 대학 강연단 멤버였던 선배가 문창과를 복수전공한다는 말을 듣고 관심이 생겼던 것이었다.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려면 필요한 스펙이겠구나 했는데 당시 전과 지원자가 단 2명이라 운이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주변 지인들은 익히 들어 아는 이야기지만, 전과 후 주임 교수님을 만나 상담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이 학과에서 전설이 되겠다고 말이다. 옮기긴했는데 막연한 과정의 시작이니 사춘기 같은 마음가짐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실패를 맛볼 수 있겠단 불안감을 없애려는 일종의 부적과도 같은 외침이었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 일종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당당하게 '홈커밍'하면 되지만 영문을 모르는 망설임은 길어졌고 결국 나는 이메일에 적힌 조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나 참석하냐는 질문에 조교는 초청한 60여 명 중 현재 10여 명 정도 의사를 밝혔다며 나 역시 참석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선정된 후배들 30명 정도가 참석할 예정인데 취업과 진로 등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는 것도 덧붙였다. 또 공연을 준비했다는데 상기된 목소리의 조교가 얼마나 고대하며 행사를 준비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전화를 끊은 뒤 여태껏 참석하겠다는 문자를 따로 보내지는 못했다. 오늘도 주말에 문자를 보내긴 좀 그러니 평일에 보내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다. 다만 행사 날짜를 캘린더에 기입해두기는 했다.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큰데 손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해 의사를 전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럴 때보면 대체 내 MBTI 앞자리가 E로 나왔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일을 할 때 희열을 느끼냐는 비스무리한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는 대답을 너무 주도적으로 해서 그랬나.


오늘날 졸업한 학과와 현업이 일치하는 경우가 드문데 그래서인지 졸업한 학과를 말할 기회가 있을 때 자랑스럽게 말을 꺼내곤 한다. 이른바 '문송합니다'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는 이 학과에서 전공을 살렸다는 뿌듯함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지 않은가. 그럴 때면 뜻밖의 말을 듣는데 한번은 한 대기업 홍보 총괄에 있는 기자 출신 선배가 '문창과 출신이면 먼저 뽑는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어디서 무얼하는지 모를 동문들이 소구력있는 결과물들을 잇따라 내주고 있기에 그런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단 소회를 밝혀둔다. 이 감격의 잔향을 이어가려면 홈커밍을 해야 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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