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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Oct 14. 2022

나머지 빈 손을 채우려는 치얼업

이른바 청춘 드라마로 불리는 작품을 시청할 때면 주책 한바가지를 일단 들이키고 보는 관람객이 된다. Paul 제공

최근 SBS드라마 '치얼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학교 응원단 이야기를 다뤘는데 처음엔 보지 않다가 우연한 기회로 1회를 본 뒤 현재 생방송을 사수하는 중이다. 대단히 특별한 서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아주 뻔한 대학생들의 동아리 경험을 풀어가는 것인데 이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풋풋한 신입생 시절 놀기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바쁜 시간들을 쪼개어 몸담고 있는 동아리에 정성을 쏟는 모습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준비한 안무를 정기 응원전에서 보여주는데 감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 흥분은 어제 소재로 다뤄지고 있는 대학교 앞을 지날 때 더 커졌다. 사실 흥분이라기보단 일종의 부러움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큰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학생들이 신호등 앞에 일제히 서 있었는데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그들의 얼굴이 참 좋게 보였다. 학점 고민을 비롯해 연애, 교우 관계, 취업 등 나름 치열한 이유를 곱씹으며 신호등을 건널 텐데 늙은이는 이같은 모습들을 떠올리며 차 안에서 흐뭇함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혼자 중얼거린 말이 있다. 이제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구나.


몇 달 전 졸업한 대학교에서 운동을 하며 학창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파묻힌 적이 있었다. 이후 바쁜 일상이 계속되며 까먹고 있었던 그리움이었는데 드라마를 통해 다시 그 감정을 복기하게 됐다. 그리고 곳곳에서 대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표정 가득 아쉬움을 드러내곤 한다. 어제 그 교차로 앞에서처럼 말이다. 돌아보면 분명 후회를 남길 만한 일들을 한 건 아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스럽고도 알차게 소비했는데 그래서인지 결여된, 당시에만 얻을 수 있는 경험들에 대한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이같은 마음을 품는다고 해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또 막상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어떤 부분에 대한 선택을 재빠르게 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 저녁 식사를 함께한 후배가 내게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줬었다. 난 여기에 '지금 모습이 되기까지 힘든 게 너무 많아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답한 바 있다. 지금 갖고 있는 걸 손에 쥔 채 나머지 빈 손에 넣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꼴이었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기까지 딱 석 달 남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학부시절엔 별로 필요해보이지 않는 이 시기가 얼른 지나가버리고 어엿한 직업인의 모습이 되길 바라고 바랬었다. 직장인이 되니 주어진 시간이 더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걸 깨달아버렸고 '그래볼 껄'하는 미처 선택하지 못한 옵션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이었다. 종종 부모로부터 전해들었지만 그냥 넘겨버리기 바빴던 '그때가 가장 좋은 거다'란 말이 적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있구나 싶었다.


뒤늦게 연차를 소진하기 시작하면서 어디론가 자꾸 떠나보려고 사부작거리고 있다. 돈과 시간이 함께 들어가는 것이어서 자칫 소모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네 직장인들은 대부분 한정적인 바운더리의 삶을 살아내고 있음을 나도 알고 당신도 알지 않은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당연하다 여겨지는 궤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그렇게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곧 주어질 내일은 인생을 통틀어 딱 한 번 뿐인데 어떻게 기억될 것이냐는 오로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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