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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02. 2022

둘러앉았더니 사라진 머쓱함

과자를, 과일을, 치킨을 내어 놓는 마음 속 오가는 이야기들은 자리에 켜켜이 남았다. Paul 제공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면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건 자는 공간이다. 숙소를 선정할 때면 부모님은 "돈이 조금 더 들더라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20대 초반에는 '몇일 밖에서 자는 거 그냥 아무 곳이나 가면 되지 않나'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 '그래서 숙소가 중요하다'는 말을 잇따라 내뱉는다. 얼마 전 태국을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1박에 3만원 가량 가성비 좋은 숙소도 있었지만 굳이 브랜드 호텔을 잡았다. 서비스가 크게 차이나진 않겠으나 그 격차에서 오는 편안함을 덧붙여 누려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제주 여행도 당연히 호텔을 예약할 참이었다. 계열사 호텔은 혼자 쓰기 너무 사치스러운 것 같았지만 다른 임직원 제휴 호텔은 나름 적당하다 판단했다. 어디서 머물러야할 지 친구에게 줄지어 질문을 던졌더니 친구는 "게스트하우스에 가라"고 추천했다. 비슷한 또래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멈칫하는 마음이 앞섰던 건 사실이다. 일할 때 이외에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성격상 공간이 주는 각종 이로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나 설득력 있는 제언이었다. 하루라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안 드는 직장에서 또래를 만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일로 만난 사이니 머릿속을 거치지 않은 말들은 와전을 만드는 데 좋은 재료였다. 이같이 켜켜이 쌓인 결여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얻겠구나 작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나와 다른 20대는 요즘 어떤 고민을 갖고 살까 궁금하던 찰나였는데 여행을 핑계 삼아 니즈가 충족될 순간을 목전에 두게 된 것이었다.


숙박을 문의하고 입금하기까지 과정은 빨랐다. 다만 제주도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시간이 다가오니 무언가 모를 떨림이 마음을 가득 채워감을 인지할 수 있었다. 목적지를 설정한 내비게이션에서 도착시간이 약 5분 정도 남았을 무렵엔 일부러 속도를 줄이기도 했다. 미지의 눈동자 여러개를 마주할 준비가 아직 안 됐다랄까. 청승 떨면 뭐할까 싶어 곧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내가 묶으려던 3인방에는 휴직계를 쓰고 2달을 살기 위해 내려온 공무원 남정네가 이미 짐을 풀고 있었다. 말을 트기까지의 그 짤막한 숨막힘은 하여튼 참기 힘들었다.


이후 저녁 9시가 넘어가자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한 여행객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모두 다같이 거실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행원을 어제 그만둔 청년, 건축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 4학년, 항공과 식품영양을 전공했으나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는 젊은이들 등 정말 갖가지 모습을 한 이들이 모였다. 일은 어떻고 공부는 재밌는지, 향후 계획은 있는지 시시콜콜한 주제로 대화는 이어졌다. 원래 소등시간은 저녁 11시였는데 사장님이 합류해 말을 이어가니 시계는 어느새 새벽 1시를 훌쩍 넘겨 초침을 움직여가고 있었다.


자리를 파하면서 따로 연락처를 교환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어떠한 계기로 관계가 이어질 수 있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작용하게 될 휘발성에 큰 아쉬움은 없었다. 그저 아주 오랜 만에 낯설지만 엇비슷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년들이 모여 한껏 떠들었음에 감사함이 컸다. 언제였을지 몰라 어느 과거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결론이 필요하지 않은 대화를 여전히 지금도 할 수 있구나 깨닫기도 했다. 물론 모임 동안 크게 벌어지는 하품을 피해보려 짙은 쌍커풀을 몇번 만들어보였지만.


이른 아침 일어나 보말죽을 먹으러 가기 위해 씻으면서 새벽까지 모여 있었던 거실을 흘겨봤다. 부산스러웠던 테이블은 언제 그랬냐는듯 말끔했고 이리저리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던 소파와 의자들도 가지런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늙어서 주책 같은 소망일지 모르겠지만 아직 하루 더 남은 밤이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하룻밤 지났다고 새롭게 올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는 마음이 간사하다 싶었다. 고독의 시간은 언제나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처럼 지나온 바를 곱씹으며 복기해야 또 다른 연료를 채워 나아가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어떤 순간이든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건 더없이 큰 축복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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