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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19. 2022

당연하다고 착각했던 울타리

논술을 치러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에게서 묻어나는 간절함의 크기는 다르지 않아 보였다. Paul 제공

지난 생일 때 받아둔 스타벅스 카페 쿠폰이 오늘 끝난다는 알람이 어제부터 요란하게 울렸다. 분명 생일 당일에 그 쿠폰을 인지하고 "곧 마셔야지" 생각했었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11월을 보냈나 싶었다. 어느새 급여날이 가까웠고 이번해의 마지막인 12월을 앞두고 있으니까. 당직을 하면서 마실까도 생각했었는데 그냥 주말에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로 미뤘다.


점심을 대충 챙겨먹고 카페로 향했다. 오랜만에 스타벅스라 나름 기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매장 안은 만석이었다. 총 2층까지 공간이 있었는데 비어있는 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로 가득찼었다. 이유는 지난 목요일 있었던 수능 후 치뤄지는 논술 때문이었다. 고3 자녀들은 모두 시험을 보고 있었고 그들을 기다리는 부모들이 전부 카페에 모인 것이었다. 한참 동안 자리가 나지 않을 것 같아 투고(To Go)로 주문을 한 뒤 커피를 기다렸다.


이들 부모는 전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똑같은 것 한가지가 있었다. 초조해하는 어머니의 표정과 차 운행을 위해 따라왔는데 시간은 좀처럼 가지 않는다는 아버지 표정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였으니 대화는 뒤섞여 시끄러웠지만 주제의 엇비슷함도 인지할 수 있었다. 우선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들은 대개 평소 자녀가 어떻게 입시를 준비했는지 처음부터 복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를 설명해주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들은 마치 입시전문가 같았다. 이들은 "상향 지원" "떨어지면 재수" 등 말도 빼먹지 않았다.


목요일이면 종료될 줄 알았던 수험생활이 논술, 수시 2차 등으로 부모 역시 해방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그들의 속내는 다 알지 못했지만 자식이 보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동일한 것 같았다. 종종 "아무리 옆에서 이야기해도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잘 한다니까"는 말이 들려왔기에 그렇다.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필요한 첫번째 단추를 끼는 순간을 두고 어느 부모가 이같은 희망을 갖지 않겠나. 오늘 날씨는 비교적 춥지 않았는데 당시 카페의 온도는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놓은 것 마냥 후끈한 열기를 보여줬다.


까마득한 고3과 재수 시절이 떠올랐다. 2년 동안 수시 11개를 접수해 면접이며 시험을 보러다닌 바 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휴가를 내고 일정을 쫓아오셨다. 무려 3수를 했던 동생 입시 일정도 아버지는 동일하게 소화하셨다. 이 시절을 지나오면서는 깊이 있게 무언가를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이후 학부를 졸업한 동생이 교육대학원 시험을 칠 때 비로소 부모의 헌신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어머니에게 전해들었던 말인데, 동생이 시험치러 들어간 건물 주변을 계속 돌며 기도를 하셨단다. 10여 년 전 나의 입시 때도 똑같았겠지 싶었다.


여차저차해서 이름은 한번쯤 들어본 회사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나름 성공한 투자인 셈이다. 투자라고 표현했지만 부모가 걱정하며 애를 쓴 만큼 소기의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학부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과정에선 오로지 내 의지가 반영됐으나 이를 준비하도록 만들어준 건 다 부모 덕이라고 생각한다. 땡전 한푼 없었던 20대 초반 자식이 어떻게 학비를 내고 비싼 어학연수를 1년 동안 갈 수 있었겠나. 누구에게 뒤쳐지지 않을 발판은 이처럼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힙입어 완성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카페를 방문하기 전 아버지를 모시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1주 전 "여름에 사줬던 반팔 운동복의 겨울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구경하고 있을 테니 고르면 전화하라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는 수화기 너머 아버지 목소리를 듣게 됐다. 얼마나 할인됐냐고 묻길래 "임직원 할인 받아서 엄청 저렴해"라고만 답했다. 값이 얼마든 무엇이 중요하겠나, 한평생 나를 위해 헌신해준 당신에 비하면 바닷가 앞 얼마나 쌓였는지도 모르는 모래알보다 작을 것이다. 부디 당연한 것처럼 아주 오래도록 내 것을 누리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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