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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25. 2022

달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나요

얼마 전 점심을 먹고 우연히 TV를 틀었다가 드라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를 시청한 바 있다. 직장인이었던 설현이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껴 시골로 내려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웹툰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결말은 잘 모르지만 현실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못하는 도서관 사서인 임시완과 행복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해봤다.


내가 이 작품을 언급하고자 했던 건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대개 드라마를 시작하면 중요 지점을 가기 위한 빌드업이 이뤄진다. 주인공이 성인이라면 어린시절을 빠르게 훑는 것이 바로 그 과정이다. 이 드라마 1회에서도 설현이 왜 시골에 내려갈 수 밖에 없었는지를 조명했다. 작품 전체를 보는 데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내 몸은 점점 TV 앞으로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단한 서사는 없었다. 그저 설현의 직장생활 스케치가 있었을 뿐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이후 도착한 회사에선 N년차임에도 불구하고 날라오는 상사의 각종 모멸감을 견디고 견딘다.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면 곧바로 씻고 다치 침대에 몸을 누인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 말이다.


설현이 시골로 내려가기 위한 결심이 서는 사건은 매우 크지 않았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회사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을 때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상사에게 지각을 한다는 톡을 남기고 바라본 창가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평온함을 설현에게 선사한 것이었다. 지하철의 목적이 출근을 위한 수단이 아닌데 이 당연한 명제를 한순간 깨닫게 된 설현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직장인 가운데 이처럼 살지 않는 이가 있나. 너무나도 뻔한 장면에 분량을 많이 쓴 것 아니냐는 핀잔이 나올 수도 있지만 나는 멍하니 시청을 했더란다. 당일만 해도 일하며 별다른 우환이 없었는데 말없이 TV를 응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아마도 나와 다르지 않은 설현의 직장생활과 함께 등장한 이 대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린 이렇게 달려갈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걸까"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하다 보니 그냥 하는 거야"가 아닐까 싶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했듯이 취업을 하는 과정도 이와 다를 게 없지 않나. 자소설을 제쳐 두고 삼성을 가고 싶은 진짜 이유를 댈 수 있는 4학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튀지 않아야 하는 한국 실정에 맞춰 어쨌든 오늘 새벽에도 앉지 못하는 만원의 지하철을 스크린 도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요즘 내게 스스로 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뭘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건 뭘까를 끊임없이 곱씹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주 직업 소개를 위한 동문 특강을 참여했으면서 말이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요즘은 썩 그렇지도 않아 보여 그런가. 특히 퇴근을 하고 저녁 약속을 나가도 취재원 접촉을 위해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날 볼 때면 진정 내가 바라던 삶이었나 싶다.


해결책이 없는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막상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하니 싱숭생숭함이 더 커진 것 같기도 하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전직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한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설현이 불특정 직장인에게 던진 질문이 와닿은 이유기도 하다. 걱정을 실컷해도 내일이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삶의 모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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