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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30. 2022

카페 2차도 거뜬했던 날

'조용한 대화'가 카페 규칙이었는데 나와 친구의 대화 목소리는 꽤 컸다. Paul 제공

칼바람이 얼굴을 매섭게 때리던 어느날이었다. 모처럼 핫플레이스라고 불리우는 동네에 위치한 카페를 가보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평일 오후 시간대임에도 카페는 만석이었다. 별 수 없이 예약자 이름을 적어두고 나왔다. 얼마나 오랜 뒤에 자리가 날지 예측할 수 없었기에 그냥 다른 곳을 가면 됐지만 이왕 나온 목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카페 주변을 정처 없이 걸었다. 한파는 아니었지만 어찌나 손이 시렵던지.


포기하고 다른 카페를 찾아볼까 싶었던 찰나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카페에 자리가 났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잽싸게 도착해 가장 많은 산미를 풍길 것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일을 해보자며 노트북을 열었는데 아뿔싸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노트북이 문제인가 싶어 휴대전화로도 연결을 시도했는데 되지 않았다. 이후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연결에 성공했는데 여유를 부리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싶기도 했다.


카페에 앉은지 30여 분이 지났을 무렵 함께 오기로 했던 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철 파업 여파로 늦게 도착한 것이었다. 친구는 서둘러 산미가 다소 없는 커피를 주문했다. 바쁜 일정 가운데 드디어 만난 것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 됐는데 내가 일을 채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그날은 잠깐 짬이 났을 때 저녁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누가 조급한 마음을 갖고 싶겠나. 그러나 자초지종을 들은 친구는 서둘러 식당을 찾기 시작했고 이제 막 받았던 커피는 20여 분 만에 원샷을 했더란다.


브레이크 타임을 끝낸 직후 방문한 음식점이어서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고 우린 빠르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후 카페 2차를 가게 됐다. 이전에 선배랑 한 번 갔던 곳으로 재방문 해보고 싶었는데 이 친구도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카페 자리에 앉자마자 취재 지시가 내려왔다. 맛 좋다고 소문난 치즈케이크에 포크를 넣을 겨를도 없이 전화통을 붙들고 카페를 들락날락 거렸다.


앞서 친구는 자신은 책을 읽으면 된다며 편하게 일을 하라고 했었다. 사실 놀기도 모자른 시간에 잠자코 마냥 기다리는 건 쉬운 게 아니지 않나. 일찍 퇴근한 뒤 어려운 발걸음을 해준 점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별 말 없이 정말 내가 일을 하는 내내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덕분에 편하게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날 따라 일이 더 잘 됐던 것 같기도 하고.


마침내 노트북을 덮고 1시간 가량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친구가 가져왔던 책에 대해 묻기도 했는데 벌써 2번째 읽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통 시간이 나질 않아 출퇴근 때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했다. 참 대단한 것 같았다. 말은 쉽지만 선뜻 해낼 수 없는 걸 실천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런 끈기가 모여 오늘날 잘 맞는 일을 웃으며 할 수 있는 근간이 됐구나 싶었다. 나보다 고작 1살 어렸지만 배울점이 참 많아 집으로 돌아오며 곱씹을 게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만나는 사람의 수는 점차 줄고 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어느덧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횟수가 많아지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친구와 같은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다는 건 큰 감사다. 별 주제 없이도 그냥 커피 한잔 하며 내게 없는 무언가를 배우고 깨우칠 수 있기에 그렇다. 나 역시 부단히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이같은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있겠지. 커다란 원에 그려져 가는 나이테가 많아지는 만큼 내실도 견고해지는 건 참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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