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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02. 2022

품격을 위해 물러서야 하는 아쉬움

요즘 신문을 보면 아주 재미없는 백과사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Paul 제공

오늘 각 언론사 포털판에 주요하게 다뤄진 이슈가 있었다. 나 역시 그 이슈를 접한 뒤 담당기관에 확인 취재를 진행했다. 또 이 기관에 직접적 영향력을 끼치는 의회의 장과 통화를 해 향후 계획 등을 입수할 수 있었다. 분명 단순 스트레이트로 써진 타 매체들 기사보다 풍성한 기사가 될 것 같았다. 발제 내용을 정리해 보고를 올렸더니 보기 좋게 '킬' 당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걸 다루냐는 취지였다.


이런 일이 오늘 한번 더 있었다. 지탄 받아 마땅한 사건이 오전 중에 알려진 바 있는데 확인해보니 더 큰 사건에 대한 연루 가능성이 있었다. 경찰에서는 증거가 모두 사라져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는데 추정은 된다고 했다. 어쨌든 수사를 진행한 사안이었고 진술과 정황이 있으니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 내용을 보고했더니 역시 물을 먹었다. 은연 중에 드러난 이유는 연합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직관계가 분명한 이 업에서 오늘 같은 경우는 빈번하다. 복잡한 이유가 따라붙지만 대개 취재를 최종 진행하지 못하게 되는 건 매체 특성 때문이다. 논조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내가 이 조직에 몸담고 있으니 따라야지 수긍해야 하는 게 대부분 기자들의 모습이다. 구성원으로서 혼자서 튈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쩌겠나. 아까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에 있는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사실 이 고민으로 회사를 바꿔야 하나 심각하게 머리를 싸매기도 했다. 회사 방침상 소위 '짜치는' 황색 기사는 쓰지 못하는데 최근엔 회자되는 이슈 또한 정경사에 깊이 관여된 게 아니면 발제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기사를 쓰는 게 꼭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구독자들의 많은 관심으로 높은 조회수와 댓글에 왜 관심이 없겠나. 우라까이(베끼기)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취재를 해야 하는 원칙과 더불어 '품격'을 나타내야 해 즐거움이 있을리 만무했다.


물론 장점이 있음은 인정한다. 어떤 이슈를 다루느냐 마느냐는 상대적이지만 데스크의 깐깐한 거름망을 통과한 셈이니 보다 정량적 이슈를 들여다보게 된다. 오늘날 인터넷 사회가 되며 각종 이야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휩쓸려가지 않고 적당한 경계를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언론은 이래야 한다는 고리타분함이 묻어날 수 있지만 말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긁은 뒤 하단에 바이라인(기자 이름과 이메일)을 달고 있을지 모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다. 더 마음껏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훌쩍 가버리면 그만이다. 다만 많이 읽힐 수 있는 기사를 쓰지 못한 통탄을 갖는 게 바른가에 대해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도 'ㅇㅇ매체 Paul기자입니다'라는 말을 취재원에게 하며 해당 이유가 마음 속 전부를 차지하지는 않았을테니. 수동적이지 않으려는 열정이 여전히 남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론 아직 사직서를 안주머니에 고이 품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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