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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07. 2022

선배의 반이라도 쫓는다면

고물가시대에도 선배가 모든 결제를 하는 이 문화는 견고했다. Paul 제공

오랜 만에 고향을 방문했다. 무려 1년하고도 반이나 지난 때 말이다. 사옥 1층 앞에서 출입처 사람과의 밥 약속을 기다리는 게 자연스러웠었는데 이방인이라는 걸 직감했는지 꽤나 어색했다. 흐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10여 분이 흐른 뒤 A선배가 모습을 나타냈다. 내 어깨를 툭하고 치셨는데 순간 들었던 반가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즐겨가던 식당들의 위치는 알아도 이름을 까먹어버렸다는 걸 알아차리게 됐다. A선배가 무엇을 먹고 싶냐며 물어보셨기 때문이다. 맛집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자 A선배는 새로 생긴 곳이 있다며 나를 안내해주셨다. 젊은이들만 가득 모였을 것 같은 펍 같은 디자인의 백반집이었다. 이런 곳 좋아하지 않냐며 물으시는데 후배를 어디로 데려갈까 고민하신 A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커피는 내가 사겠다며 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A선배는 "됐다. 후배가 그러는 거 아니다"며 1만원 정도 되는 커피값을 결제하셨다. 이후 자리에 앉은 A선배는 "다 위에서부터 전해 받은 사랑 덕분이지"라고 말하셨다. 여기서 언급된 '위'는 선배가 모든 걸 계산하는 기자의 특유 문화를 너무나도 잘 실천하시는 B선배 이야기였다.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편집국장인 B선배는 각종 강의를 통해 급여의 3배 이상을 벌고 있다. 돈이 많다고 해 가족이 아닌 남에게 쓰는 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지 않나. 그러나 B선배는 늘 최고로 비싸고 좋은 밥집을 찾아 후배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며 말이다. 기자 문화를 제쳐두고 이같은 사랑을 받았으니 본인도 아낌없이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A선배는 설명하셨다.


받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 하나. A선배를 포함해 고향에 있는 다른 선배들이 내게 준 수많은 감사들이 스쳐갔다. 이를 추억하자니 돌아갈 수 없는 2년 전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A선배도 "그때는 취재도 열심히 하고 참 재밌었는데 지금 구성원은 그러지 않아"라며 아쉬움을 내비치셨다. 그랬다. 일이 재밌었을 때가 있긴 했다.


무엇이든 처음 누구한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고향 선배들은 이제 막 입직한 후배를 위해 기꺼이 단독을 내어주셨다. 예상치 못하게 언중위에 걸리면 쫄지 말라며 뒷일은 본인들 몫이라고 다독여주셨다. 기사가 잘 써지지 않는 날엔 그날 판을 접고 맛집을 찾아 택시로 1시간을 가기도 했다. 고민으로 낙심하면 편의점에서 탄산 하나 사들고 같이 등산을 했다.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겠단 말에는 "기쁘다. 얼른 가라"며 아낌없는 응원을 더하셨다.


이같은 배움으로 커간 내가 화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 고향 출신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정직하고 성실한 글쟁이가 되는 것이었다. 현재 얼만큼 이를 실천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껏 주어진 바에 대한 요행은 부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베풀 수 있다면 아까워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나누려고 했다. 언젠가 다른 감사의 제목으로 돌아온다는 선배들의 말을 믿고 말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주제는 없다. 어느새 두시간이 훌쩍 흘렀었고 A선배와 나는 자리를 파했다. 이후 A선배에게서 "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 보니 흐뭇하네"란 톡이 왔다. 초심 잃지 않고 정진하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여서. 아직까지 어떤 기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A선배의 반이라도 쫓으면 좋겠다 싶다. 그리고 언젠가 아무개 후배에게 똑같은 말을 듣는다면 충분히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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