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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14. 2023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학부시절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인사이트 포럼 등을 쫓아다닌 건 값진 경험이었다. Paul 제공

얼마 전 수년간 어머니의 백골 시신을 방치한 사건이 알려진 바 있다. 정확한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자택에서 발견된 메모를 통해 추정하기로 2020년부터 약 2년 동안이다. 경찰 조사에서 함께 살던 딸은 연금 수령 때문이라고 했다. 모친 계좌로 구청을 통해 기초연금 30여 만원 등이 매달 입금됐는데 이를 위해 사망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누리꾼들은 어떻게 돈 때문에 모친을 그렇게 만들 수 있냐며 화를 잇따라 쏟아냈다. 여론이 꽤 나빠서였는지 혐의자는 검거된 지 이틀 만에 구속됐다.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취재를 진행하며 궁금했던 건 경찰에 최초 신고를 진행했던 사람에 대해서였다. 모친의 다른 딸로 알려졌는데 어머니와 연락을 시도했는데 갑자기 닿지 않자 이같이 경찰을 찾았다고 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경찰에 따르면 모친이 사망한 추정 시점은 2년 전이다. 형사과장을 통해 취재를 해보니 실제로 모친과 가해자로 추정되는 딸 이외에 다른 자식은 그동안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2년 동안 모친이 무엇하고 사는지 왕래도 않다가 이제서야 연락을 취한걸까.


가족의 보험금 등을 노려 발생한 흉측한 사건은 많다. 다만 이 경우 보험금 등이 매우 거액이란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 언급된 연금은 기껏해봐야 매달 60여 만원 정도다. 범죄 발생 유무를 액수에 따라 나눈다는 게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거다. 2명이 아니라 혼자서 살기에도 60만원은 아주 적은 돈에 불과하다. 언제 누구에 의해 범죄가 발각될 지 모르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그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뭘까. 자동으로 지급 받는 연금이 아니면 생활을 할 수 없어서였을까.


혹자는 자력갱생의 부족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처리를 비관하지 않고 나름의 대책을 세워 꾸려가는 많은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도 들지 않는 결심 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면 어떨까. 다른 가족들의 사정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모친과 이 딸을 외면해왔다고 가정하면 말이다. 어떻게 해서 버텨는 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어머니를 여의게 됐고 그래도 살아야 하니 결과적으로 이같은 범행이 발생될 수 밖에 없었다면 세상이 들이미는 잣대는 달라져야 할까.


지난해 8월 수원 세모녀 사건을 취재한 바 있다. 이들 모두 병에 걸렸었고 경제적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세모녀는 극단 선택을 했는데 발견된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전입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관할 부처 담당자들은 직접 전입 신고나 어려운 상황을 알리지 않으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지원을 위해 관내 사각지대를 아무리 찾아도 해당 사건들을 발굴하는 데 까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혜 대상자를 나무랄 수도 그렇다고 부처 담당자를 질책할 수도 없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번 백골 시신 사건의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큰 틀에선 앞서 언급한 세모녀 사건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 부랴부랴 해결책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에 수혜가 필요한 대상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필요하지 않음에도 지원을 버젓이 받고 있는 집단이 있는 반면 절실하는데 갖가지 이유로 혜택에 도달하지 못하는 더 많은 이가 존재하기에 그렇다. 비슷한 취재를 할 때마다 국회 복지위 간사들을 괴롭히지만 매번 "법안 발의하겠다"는 답변만 받을 뿐이다. 분야에 관심 없고 단지 이번 해에 배정된 위원회가 여기란 말을 돌려 한 것이다.


학부시절 사회공헌사업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몸담았을 때 담당자들이 번번이 낙담하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내가 직접 사회에 나와보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열의와 능력이 충분해도 근본적 사회문제 해결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두손과 발을 마냥 놀리는 건 다른 문제라고 본다. 어느 분야든 비슷한 결로 무언가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존재할테니까.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해도 가까이 맞닿은 부분으로부터의 변화를 꾀하는 데 함께 고민하는 만남을 하고 싶은 올해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아끼지 않고 선용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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