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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07. 2023

일념으로 펜대 굴리는 사람들

원하는 바 잘 가려면 알맞은 연료가 꼭 필요한 법이다. Paul 제공

어제 부서 회식을 위해 회사로 들어갔다. 연말에 이어 연초 식사를 한차례 끝낸 회사들 가운데 우린 꽤 늦은 후발 주자였다. 저마다 취재 일정 등이 맞지 않아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찾고 찾은 게 어제였기 때문이다. 장소는 갈비집이었는데 이미 한번 방문을 한 바 있다. 입직하고 나서 약속 장소가 고기집이었다면 대부분 구워주는 곳이었다. 여기도 그랬는데 가격 생각 않고 법카로 소를 실컷 먹을 때 기분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지난 회식 땐 예약을 늦게해 식당 중앙에 앉았는데 이번엔 데스크의 발빠른 조처로 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식사를 하기에 앞서 선배는 1년 동안 잘 해보자며 고오급 전기 포트를 선물로 돌리셨다. 처음엔 회사 협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토스트기와 전기 포트를 한참 고민했다고 하셨는데 나름 진지함을 장착하신 선배가 노트북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셨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기자 10명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출입처나 취재를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바빴다. 고기나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룸으로 들어온 직원들은 우리의 이야기에 놀라는 표정을 이따금씩 짓곤 했다. 법조 출입할 때 ㅇㅇㅇ형이랑 커피 마시면 그렇게 사람 얼굴을 안 봐, 그 정치인 가발인지 아닌지 후배랑 한참을 고민했다니까 등 말을 매우 평온한 얼굴로 내놓고 듣고 있었기에 그랬다.


한 선배는 고기를 막 먹고 있다가 전화를 받고 급하게 기사를 처리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정규 근무 시간은 그저 연봉계약서에 명목상 있는 몇개의 글자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어디든 있고 싶은 곳으로 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걸까. 얼마 전 다른 선배가 후배들에게 요즘 어디 기자실에 가 있냐고 물었더니 다들 "어디어디 가 있어요"라고 했단다. 죽어도 출입처는 들어가지 않고 어딘가에 박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올해도 이 일을 뚝심있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굳이 올해로 한정짓지 않고 남은 인생을 얼마나 기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봤다. 연차가 두자리 수로 접어든 선배들은 어떻게 지금껏 그만두지 않고 종사를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근본적인 이유 말고 말이다. 한 번 뿐인 자신 삶을 두고 무슨 가치를 찾았기에 지금도 현장 곳곳에서 펜대를 굴리는 걸까. 늘 동일한 고민에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 해보고 싶은 생각 중 하나다.


회식을 마치고 데스크가 결제를 하러 갔고 나머지 9명은 식당 밖에서 한줄로 서 있었다. 난 줄 맨 끝에 있었는데 동기와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들이 멋있게 보였다. 술 한잔도 안 마시고 사이다와 콜라를 섞어 마셨을 뿐인데도 말이다. 영락 없는 아저씨, 딸 뒷바라지하는 엄마, 신혼생활을 즐기는 새신랑 등 지극히 평범하게 세상을 사는 이들이 취재를 나설 땐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더뎌도 세상을 바꿔 갈 수 있다는 일념이 박봉에 출근만 있는 이 업을 계속 할 수 있는 동력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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