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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Dec 31. 2022

지난 10년을 톺아볼 때

재수 시절 가지도 않을 공연 팸플릿을 모아 들춰보던 게 유일한 낙이었다. Paul 제공

20살 1월 1일을 기억한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몇개의 정거장을 지나 도착할 수 있는 재수학원의 한 강의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친구들은 들뜬 마음으로 캠퍼스를 거닐 준비가 한창일 때 난 다시 EBS 수능특강을 마주해야 했다. 허파에 바람이 들어 고3 시절 한껏 논 덕분이지만 인생에서 처음 맛본 큰 패배감은 참 씁쓸했다. 성공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옆자리 형처럼 N수의 길을 걷는 건데 얼마나 쫄렸을지 상상이나 해봤나.


특히 모든 강의를 들은 뒤 저녁을 먹고 옆 건물에 있던 자율학습실에서 야간 공부를 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아침 8시부터 하루 종일 책을 봤는데 또 서너시간을 꼬박 움직이지 않아야 했으니까. 이에 나는 저녁 시간을 십분 만끽하곤 했었다. 별다르게 할 무언가가 있지는 않았다. 그냥 아무런 발길이 없는 학원 앞 공연장 로비에 앉아 유유자적하게 갖가지 생각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생각보다는 걱정이 가득한 두려움에 가까웠다.


이후 난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발표한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당시 야간 학습 1교시가 마친 쉬는시간이었는데 하루 일찍 합격자가 나와 확인을 했던 참이었다.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걸 확인한 뒤 곧바로 짐을 싸 학원을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딱히 들었던 기분은 없었다. 그래도 공부한답시고 지하철에서도 책을 펴들어 문제를 풀곤 했었는데 이제 끝이라는 후련함이 그동안 지쳤던 마음을 토닥여주는 듯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딱 한번 뿐인 20살이 지나갔다. 혹자는 꿈을 위해 준비했던 시기니 괜찮지 않았냐 할 수 있겠으나 자발적 선택이 아니었던 터라 솔직하게 후회가 남았다. 고2까지 나름 잘 준비했었는데 고3 딱 1년만 더 참고 공부할껄 하는 마음 말이다. 재수를 하며 어차피 시작했으니 좀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단단히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서 빨리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범위에 있는 대학에 붙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21살 때부터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멋지게 사는 건 둘째치고 다시는 후회로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지 않기 때문이었다. 강남이나 분당 언저리에 사는 친구들처럼 부모의 대단한 빽이나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기에 내가 스스로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게임이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으면서도 삶을 주도적으로 살려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그것에 몰두하면 다른 어떤 요소 없이 닳지 않는 재능만 활용하면 됐었으니까.


대학교 1학년과 군복무 2년 동안 3년을 꼬박 고민한 끝에 글이란 도구를 찾았다. 사실 이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나 지금도 여전히 내가 뛰어난 글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봤을 때 잘나게 보이는 것 아니겠는가. 저마다 이런 강점 하나쯤은 있고 그것을 발굴해 활용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의지에 달렸다고 본다. 재벌집 막내 아들 둘째 손자가 아니었던 난 꽤나 절박하게 찾은 도구가 빛을 볼 수 있도록 애썼다.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던 이 당시 노력이 고3때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따금씩 상상을 한다.


내일 23년도 1월 1일이 되면 나이 앞자리가 바뀐다. 가장 찬란하다고들 말하는 10년이 훌쩍 지나간 것이다. 재수생 때 직전 1년을 돌아봤던 것처럼 내게 주어졌던 20대를 돌아보니 별다른 후회가 없음을 자각한다. 물론 항상 현명하고 올바른 결정이 가득했던 건 아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어떠한 목표를 위해 발을 담궈야 했던 과정들을 성실하게 헤쳐갔다. 성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원했던 바를 이만큼 구체화시켰으니 자부심이 있다. 이 모든 건 삶에 중요한 지표이자 원동력이 됐고 되어주고 있다.


내일이 된다고 바뀌는 건 없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 느낌이랄까. 전혀 유난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부산스럽게 해봐야 할 일들을 나열하는 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갖추기 위해 소진한 지난 10년이었다면 내가 쥔 것을 어떻게 적용하며 살지에 따라 앞으로 10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종종 언급하는 단어가 있는데,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짜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눈을 둬야 할 곳에 두고 내것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기꺼이 나눌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삶 말이다. 이를 위해 당분간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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