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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19. 2023

왜 안 하냐는 말에 당당하려면

나는 어떤 기준과 가치를 적용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Paul 제공

2년 전 한 대학생봉사단의 요청으로 소소한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기억에 남는 질문은 '대학생들을 만나면 어떤 걸 하고 싶은가'였다. 학부시절 약 3년 동안 사회공헌사업 현장을 쫓으며 가장 아쉬웠던 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현으로 옮기기엔 돈을 비롯한 실행 능력이 부족했었다. 그래서 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올드 멤버들의 역량을 활용해 실물의 결과물이 담긴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하고 싶다고.


당시 인터뷰를 다뤘던 주체가 실제로 동문회 엇비슷한 걸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내 대답이 현실로 이뤄지리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행사 개최가 무산되며 아쉬운 마음을 삼켰었다. 변명을 하자면 나도 당시엔 사회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라 이같은 부류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지가 부족했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조금씩 진전가능한 안을 하나둘씩 쌓으면 됐었는데 말이다. 이러다보니 인터뷰를 한지 벌써 2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얼마 전 1년에 단 30분이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면 성공이라 여겨지는 분을 만났다. 여전히 퇴근시간은 연봉계약서에만 존재하는 삶을 살고 계셨다. 간만에 성사된 만남이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이 분이 몸담고 또 내가 관심있는 주제, 앞서 언급한 분야에 대해 생각을 교환할 수 있었다. 거창한 의제가 오고 간 건 아니었다. 다만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은 이 분야에 몸담은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파헤치고 싶은 이슈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계속됐다. 정리된 말들은 아니었고 스치는 생각들을 여과없이 던지는 시간이었다. 대뜸 그분은 내게 "지금 실물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위치인데 왜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게요"란 답 이외에 별다른 회신을 꺼내진 못했다. 그러자 "학부시절 3년간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열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을 건네받았다.


내가 어학연수 시절 비영리 취재팀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함께 해줬던 멤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혼자서 론칭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모든 걸 감당하려했다면 아마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취재팀이었다. 학부시절 사회공헌 관련 콘텐츠를 만들며 단어 한글자를 두고 몇시간씩 고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아주 작은 회의실에 함께 모인, 뜻을 같이 했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창한 이름표가 아니라도 소기의 가치를 만드는 일은 애초에 혼자서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회에 나온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 가운데 방향성을 이타적으로 취하려는 시도는 보기 좋은 감투를 챙기려는 영악함이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뿌듯함은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뷰 기사란 좋은 도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사람 혹은 단체를 바로 나란 기자가 보도했다 정도의 빛좋은 사명감은 차고 넘치게 쌓을 수 있다.


사실 인턴 때 방금 언급한 인터뷰를 줄줄이 진행했었다. 실제로 이런 인터뷰를 통해 수년째 계류중이던 법안이 통과됐던 사례도 접했으니 허울만 좋다 단정지을 순 없다. 다만 학부시절 그랬던 것처럼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는 일을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의지가 남아있는 것 같다. 20대는 어리고 40살은 너무 많다고 하던데, 그 중간에 낀 서른이 사부작거리기 딱 좋은 때인가. 뭐가 됐든 올해는 시도란 발자국을 내딛었으면 한다. 왜 하지 않느냐란 말에 더이상 내놓을 변명이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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