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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an 20. 2023

9000원과 맞바꾼 그 무엇

세상에서 가장 아까운 건 주차요금인데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Paul 제공

하루는 생각 없이 발제가 될 만한 이야기를 찾다가 우연히 한 기사를 접하게 됐다.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에 대한 리뷰 형식의 인터뷰였다. 이에 응한 사람은 여태껏 기사에서 자주 접했던 유명한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일종의 사회공헌사업을 이끌고 있었는데 시작한 계기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었다.


흔히 기자는 세상에 모르는 번호가 없다고 말한다. 아는 기자에게 혹은 기자들이 모인 단톡방에 알고 싶은 취재원의 번호를 물으면 곧바로 얻어낼 수 있기에 그렇다. 이렇게 해도 따지 못하는 연락처는 직접 부딪히는 수 밖에 없는데 직업 특성상 손쉽게 알게 된다. 이번엔 좀 어려웠다. 일반인에 가까웠기 때문인데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A대표가 운영했던 SNS 몇개로 소개와 연락처, 이메일을 남겨뒀다.


인연이 된다면 회신이 오겠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날라왔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A대표의 연락이었다. 다양한 인사이트를 나눠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A대표는 흔쾌히 수락을 했고 약속 장소를 빠르게 선정했다. 당장 취재를 진행하는 것도 아닌데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주다니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기사와 영상으로 A대표가 단체를 설립한 이유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입을 통해 전해듣고 싶었다. 미디어는 정제되기 마련이니 날것의 결심이 더 큰 귀감으로 작용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됐고 어떤 마음으로 종사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이뤄내야 무언가의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덧붙여서 말이다.


놀랐던 건 A대표가 단체를 설립하려던 계기였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내가 돼야겠다 생각했단다. 그 어떤 이유보다 명확했다. 이 말을 듣는데 A대표의 눈에서 빛이 나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 누군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분야는 더더욱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던 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어제를 살았고 주어진 오늘을 감사히 여기며 다가올 내일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그동안 관련 분야의 책을 숱하게 읽고 모임과 포럼을 열심히 쫓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우리 앞에 놓인 여러 사회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년 가늠이 되지 않는 돈을 쏟아내는 대기업 사회공헌팀들 역시 이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시적 성과에 매몰돼 왔을지도 모르겠다. A대표에겐 지표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단 한명이라도 나눈 것에 수혜를 받았다면 그걸로 됐다는 것이다.


멀지 않은 때 유무형으로 함께 할 기회가 있다면 합류하겠냐고 물었다. A대표는 망설임 없이 곧바로 '그렇다'는 답을 내줬다. 작은 일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단 가치쟁이들의 결심이 한데 묶이는 순간이었다. 카페 이용으로 주어진 무료 주차시간은 무려 2시간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요금을 정산하니 요금은 9000원이 돼 있었다. 내가 지불한 건 15분당 1000원이었지만 1천배의 수확을 올린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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