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딱히 목표 대학이 없었다. 그러던 2학년 어느날, 학교 복도를 거닐다가 교무실 앞 수납장에서 한 대학의 팸플릿을 발견했다. 사실 팸플릿이란 홍보를 위한 것이니 딱히 새로울 무언가가 담겨있긴 어렵다. 그나마 매년 변하는 입시제도를 반영한 정보 정도가 업데이트되는 수준. 그런 팸플릿에 시선을 사로잡은 문구가 있었다. 바로 'Why not change the world?'란 그 대학의 슬로건이었다.
잽싸게 이 대학 팸플릿을 집어 내 자리로 돌아왔다. 대학교가 참 알쏭달쏭했다. 이 대학은 무전공 입학으로 2학년 때 2개의 학과를 복수전공 하도록 커리큘럼이 생성돼 있었다. 또 전학년을 한데 섞어 1년간 팀이 되어 각종 활동을 한다. 타 대학과 비교했을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몇가지 제도들이 더 있었고 내 마음은 완전히 홀렸었다.
고3때 CGV VIP였으니 당연히 재수를 했다. 재수생이라면 대학을 초상향 지원하기 마련이지만 난 뚝심있게 가슴을 설레게 한 대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졸업생들이 왜 그 대학이어야 하는지 영상을 통해 아주 친절하게 소개해줬는데, 물론 단면적인 부분들이 있겠지만 곳곳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수시에서 면접까지 갔으나 보기좋게 떨어진 내게 이 대학은 어렴풋이 남아있는 하나의 기억이 됐다. 대학생활을 하며 현실에 치이다보니 까맣게 잊었던 영어문구는 한 대기업 사회공헌사업에 참여하며 다시 떠올리게 됐다.
사업은 등가교환이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기업은 매우 철저히 이같은 결과를 따지는 편이다. 정확한 내막을 알 순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몸담았던 3년간 이 사회공헌팀이 보여준 행보들은 결코 전략적으로 두드린 계산기에서 나온 결과는 아니었다. 단 한명이라도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종의 고민들을 함께하던 대학생들과 격의없이 답을 찾아갔다. 그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니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고민 않고 자신있게 이 경험을 말하곤 한다.
흔히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사업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그랬다.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주5일을 꼬박 출근하다시피 만난 적도 많았다. 시작하는 시간은 있었지만 마치는 시간은 정해두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토론했다. 혹여나 대중교통 막차가 끊겨 택시를 탈 때면 오늘 하루도 뿌듯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들고 모여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건 얼마나 감격스런 순간인가. 방구석 서랍에 잔뜩 엉켜있는 단원증과 빼곡하게 모아둔 그때 자료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타임머신이 하루 빨리 발명되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1년 전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 현실에 꽤 순응한 모습이 보여. 최근 내가 들은 말이다. 순간 그 대학을 가거나 사회공헌사업을 해야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따위의 설레는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중요한 건 마음인데 내뱉은 말을 곧바로 실행시켰던 과거 열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무기력한 직장인을 향해 혀를 끌끌 차곤 했던 내가 어느새 다를 바 없는 동일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월요일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상상을 해본다. 아니 정확히는 요즘 꽤 많이 상상을 한다. 다시 이같은 일을 도모할 수 있을지 말이다. 사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어찌할 바 몰라 노트북을 열었던 적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바로 윗 문단에서 언급했던, 현실은 생각보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달 전 진행한 인터뷰에서 내뱉은 말이 계속 멤돌아 시기 미정의 뻘짓을 추진해보려고 한다. 당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해결해보고 싶은 이슈들이 있을 때 아직 대학생이라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해결책이 한정적이었다. 이젠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각자의 영역들이 있을 텐데 그 풀들을 활용해 실질적 대책을 제시하는 일을 진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