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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28. 2023

부딪혀 보면 안 되는 건 없었다

이 이메일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Paul 제공

개강 시즌이 다가오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4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 난 수강신청에 실패를 했었다. 계열을 뛰어넘은 전과 여파로 수강 과목이 리셋됐고 마지막 학기까지 19학점을 꽉 채워 들어야 했다. 불행스럽게도 우리 학과는 학년별 과목이 정해져있지 않아 매 학기마다 광클(광나게 클릭)을 해야 했다. 여기에 보기 좋게 실패한 나는 5과목 가운데 4과목을 신청하지 못했다.


학과 조교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미 취업을 했는데 신청을 하지 못한 과목들을 듣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어 각 과목 교수들에게 인원 추가를 해줄 수 있는지 문의를 해달라고 했다. 알아보겠다던 조교는 나와 통화를 끝낸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회신을 줬다. 수강 인원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올해 졸업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 조교는 "동일한 이유로 5학년을 다니는 학생이 많다"고 답했다.


어이가 없는 걸 넘어 헛웃음 조차 나오지 않았다. 무려 4과목이나 되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모두 돌려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5분만에 전화를 준 건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교양도 아니고 전공 강의의 인원 조정을 임의로 하지 못해 45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또 내고 다녀야 한다는 말을 당연하게 하다니. 조교의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도대체 그 자리에 왜 있는건지 참 의아했다.


난 교수들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 뒤 직접 연락을 취했다. 이메일에는 글을 쓰고 싶어 이 학과에 전과했고 그것을 발판 삼아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적었다. 또 이미 졸업 학점을 채웠으나 전공 과목을 추가로 수강해야 해 이런 사달이 났다며 재고를 부탁했다. 기회를 얻는다면 이 학과 출신임이 부끄럽지 않도록 현업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도 덧붙였다.


이메일을 받은 교수들은 곧바로 그러라는 회신을 보내줬다. 어떤 교수는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취업을 축하한다며 기자페이지 구독을 했다고 인증을 해주기도 했다. 또 다른 교수 역시 문자로 응원한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조교가 나의 어려움을 교수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난 마지막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이듬해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조교가 추가 학기를 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좀 쫄리긴 했다. 적지 않은 큰 돈의 등록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인데 꿈을 위해 나아가는 학생의 길을 막으려는 교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합리적으로 수용이 가능하다면 유두리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일화를 통해 부딪히면 어떻게든 길이 마련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후에 비슷한 일이 발생하면 혹은 얻고 싶은 성취가 있으면 꽤나 담대히 그것들을 마주했던 것 같다. 역시 경험을 통해 얻는 교훈은 커다랗게만 보였던 장애물을 단번에 헤쳐갈 수 있는 큰 무기가 된다. 지금 당장 고민에 사로잡혀 갈 길이 막막하다면 일단 나아가보길 권한다. 하는 것보다 하지 않았을 때 후회가 더 큰 법이고 이후 마련한 돌파구는 나만의 방법으로 축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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