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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04. 2023

진짜 모르겠는 다음 단계에 관하여

여행을 하다 마주친 각자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보면 어떤 목적을 갖고 있을까 호기심이 들곤 한다. Paul 제공

지난 2019년 9월쯤 새로 출시한 아이폰11pro를 구매하기 위해 명동을 찾은 바 있다. 당시 휴대전화를 바로 반납하면 추가 할인을 해줘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마음 먹으면 일단 행동으로 옮기는 성향의 나는 사진 백업이라는 중대한 업무를 빼먹고 매장을 찾았었다. 원칙은 새로운 휴대전화를 구매함과 동시에 이전 휴대전화를 반납해야 했는데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그 자리에서 1시간 가량 정보를 옮기는 작업을 했었다.


갑작스럽게 데이터 대이동을 해야 하니 참 조급했던 기억이 있다. 이에 새로운 휴대전화로 옮기는 것은 물론이고 포털 드라이브와 맥북에도 여기저기 파일을 보냈었다. 그리고 잊었는데 얼마 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맥북 사진첩을 열었다. 매우 오랜만에 마주한 모습들이었는데 스크롤을 위아래로 넘기며 이 말만 반복했다. 와 이때는 진짜 젊었구나.


물론 정년퇴직을 바라보는 어른들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여전히 앞으로가 창창한 젊은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소회는 그저 멋모르는 애송이의 추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애송이가 딱 4년전 사진을 들춰보는데도 시간이 빠르다는 걸 새삼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나간 시간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 말은 어찌보면 무게를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대단한 명제임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좋았던 시절이라며 한가하게 추억할 수 있는 여유는 지금 내가 원하는 어떤 걸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뤘거나 그에 상응하는 생산을 매일 하고 있단 거다. 만약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산더미 같은 과제들을 쳐내기에 바쁘지 않겠나. 이같은 한가로움은 나중쯤으로 미뤄둘 사치라고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요즘 혼동이 온다. 어쨌든 이만큼 잘 찾아왔는데 이 다음엔 무엇을 바라보며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들기에 그렇다. 선험이 가득한 어른들은 우리에게 '그때는 도전을 마다하지 않아도 될 제일 좋을 때'라고 하지 않나.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고 귀하게 소비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가 빠진 것이다. 아이도 아닌데 그쯤은 스스로 개척해야지라고 한다면 딱히 내놓을 반박은 없다. 근데 진짜 모르겠는 걸 어쩌나.


최근 틀에 박힌 걸 하지 말고 정말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서라는 조언이 중고생에게 많이 전해지곤 한다. 이런 세세한 고민 따위 하기 싫다면 일단은 그저 공부만 하면 된다. 아무런 생각 않고 말이다. 개천에서 더이상 용나는 일은 없다지만 수능을 딱 한번만 잘 보면 절대 깰 수 없는 방탄 카르텔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 성공은 상대적 개념이지만 우리네 사회는 보편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니까.


의사나 검사가 돼 명예와 권력을 갖겠다는 꿈도 본인이 원한다면 꿈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이에 자기주도적 성취도 상대적이고 그렇다면 '틀에 박혔다'는 말은 심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우린 당사자가 아니기에 판단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경우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쓰기란 도구를 찾았으나 직업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했었다. 이왕 선택하는 직업, 가장 영향력있게 일해보고 싶었다. 영향력있다는 꿈을 말하기에 좋은 포장지이지만 기자란 직업을 놓고 보면 사회적 통념을 포기하지 못했다 볼 수 있는 건가.


현재 내 모습을 인정하고 향후 주어지게 될 삶을 별다른 고민 없이 무던히 살아가면 이런 혼란은 없을지 모른다. 다른 말로는 감사를 세어보지 않은 채 만족할 줄 모른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서로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게 맞다면 한번쯤 퇴근 후 침대나 소파에 누워 유튜브 새로고침만 하며 내일 출근을 기다리는 보통의 삶에 대해 궁금함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곤 이대로 괜찮은가 어느날 문득 멈칫했던 순간이 있지 않은가. 가시화하지 않았지만 은연 중에 다음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을 곱씹고 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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