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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11. 2023

쌓여가는 직장인의 보통날

느긋하게 가면 되는데 꼭 빨리 가려는 움직임은 어디서든 있다. Paul 제공

지난 금요일 기획 기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회사로 들어갔다. 오전 8시쯤 지났을 무렵 보도국으로 가니 경력 채용에서 나를 뽑아준 선배가 이미 출근해 취재 지시를 하고 있었다. 간만에 뵙는 얼굴이라 얼른 가서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내 자리에 와 앉았는데 별안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점심 약속이 없으면 같이 하자는 선배의 문자였다. 갑자기 바뀐 스케줄 탓에 다른 점심 약속을 잡지 않았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렇게 선배와 나는 오전 11시부터 한우를 굽기 시작했다. 근래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회사에서 도는 소문들은 어떤게 있는지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대뜸 선배가 내게 "잘 살고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답했다. 지난해 힘든 시기를 보낼 때 버텨보자는 선배 말을 듣고 이제껏 힘을 내서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특히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던 선배의 말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선배는 어려움을 묵묵히 공감해주시곤 한다. 이리저리 발품을 팔며 잘 풀리지 않는 취재를 하면 어떤 이는 '누군 안 해본 줄 아나'라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실제 내가 겪은 데스크 가운데는 이런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데스크가 있었다. 이 선배 역시 정년을 향해 가고 있는 년차인데 그걸 모르겠나. 그럼에도 선배는 후배의 푸념에 "맞아. 그런 게 참 힘들지. 그래도 기사를 보면 고군분투한 게 보여"라는 말을 던져주신다. 말이란 도구를 선용하는 것이다.


배부른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선배는 "힘든 게 있으면 언제든 털어놔. 이방인들끼리 뭉쳐야지"란 말을 건네셨다. 공채가 아닌 경력 출신들끼리 힘을 내 잘 나아가보자는 짧은 격려였다. 아까 밥을 먹을 땐 잘 보이지 않던 선배의 얼굴이 따뜻한 햇빛 덕분에 환하게 비춰져 볼 수 있었다. 얼굴에 나타난 표정으로 모든 걸 다 알 순 없지만 이 직업은 데스크에 올라도 참 어렵구나 싶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 내 얼굴을 봤는데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보도국으로 들어와 점심 때 출고한 기획 기사 반응을 살펴보니 다채로운 댓글들이 참 많았다. 현상을 보도하려고 했고 치우치지 않는 시각을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수합했다. 어떻게 보면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일 뿐인데 기자를 그만두라는 엄포를 친절히 이메일로도 받고 나니 노년엔 뭐먹고 살까 잠시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기사를 잘 읽었다는 선후배들의 토닥임도 전해 들어 나름 위로가 됐다.


이번 한주가 좀 정신없기는 했다. 일을 나갔다 집에 들어와 운동과 잡무를 마치면 늘 밤 11시 반을 넘겼다. 다음날 다시 나가려면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일에 대한 부담감때문인지 일주일 내내 잠을 설쳤다. 그러니 선배들을 만나도, 약속을 나가도 어떤 말이 오가는지 명확히 집중을 못했던 것 같다. 우리네 직장인들이 모두 비슷한 일주일을 살 것이고 뭐 그리 유난스럽냐고 하겠지만. 내가 되게 힘들었다는 걸 어필하려기보단 그냥 이번주가 그랬다 정도의 현상 나열이다.


애석하게도 토요일인 오늘 일을 하고 있고 내일도 월요일 출고 기사를 위해 노트북을 열어야 한다. 월요일은 오전부터 데스킹을 봐야 하니 공식적인 휴무는 사실상 무용지물인 셈이다. 선배랑 고깃집을 나오며 "우리 다시 버텨보자"는 말과 함께 화이팅을 외쳤는데 지금은 퍽 자신이 없는 것 같다. 2주 뒤 평일에 연달아 3일을 쉬는데 시간이 짧게 걸리면서도 가장 저렴한 비행기값을 보이는 해외에 대한 방문을 추진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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