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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Feb 25. 2023

누구보다 잘 헤쳐가겠지

학부시절 강남역 인근을 지나며 과연 내 회사가 있을까 고민한 바 있다. Paul 제공

지난 목요일 갑자기 잡힌 회의를 하러 회사로 들어간 바 있다. 다행히 회사에 친한 선배가 근무를 하고 있어서 2시간이 넘도록 수다를 떨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자리를 파하고 회사에 도착했을 때 문득 A인턴이 생각났다. 몇주전 르포기사를 썼는데 잘 읽었다며 소소한 후기를 보내준 후배였다. 아무것도 아닌데 애써 연락을 준 마음이 참 고마웠다. 혹시 회사에 있다면 커피라도 한잔 사줄까 연락을 해봤다. 그랬더니 회사에 들를 일이 있어 곧 들어갈 참이었다며 도착해 연락을 주겠다 했다.


회의를 마치고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회사 1층에 도착했다는 A인턴의 연락이 왔다. 곧장 내려가니 그와 지난 6개월간 함께 했던 B인턴이 있었다. 둘 다 카페로 데리고 가 이것저것 결제를 해줬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았는데 B인턴은 일정이 있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건넨 말이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꼰대가 아니었나 싶긴 하다. 기자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는데 B인턴은 이런 답을 줬다. 도전을 꿈꾸기엔 너무 대단한 선배들 뿐이라 엄두가 안 난다는.


이어진 말에서 B인턴은 자신이 이 회사에서 기자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나는 재빨리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했다. 나도 일하고 있는데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덧붙여서 말이다. 그래도 자신이 없다는 B인턴에게 무언가를 더 전하는 건 훈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사줄테니 꼭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전한 마음은 이것이었다. 대학 졸업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충분히 고민하고 원하는 길을 걸으라고.


이후 A인턴과 가진 짧은 티타임에서도 B인턴과 비슷한 고민이 대화을 이끌었다. 이제 곧 졸업을 해야 하고 인턴을 하며 기자를 꼭 해보고 싶은데 어떤 방법을 찾아야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곧 끝날 인턴을 대비해 타 언론사 인턴 면접도 보고 왔다고 털어놨다. 언젠가 기자가 된다면 이곳에서 일하고 싶은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함께.


꽤나 심각했던 후배의 고민을 앞에 두고 과거 회상이나 한가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말을 해줬지만 사실 그건 나의 방법이었으니 어쩌면 전혀 쓸모없는 영웅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꼭 컨설팅 학원처럼 뾰족한 해결책을 내놔야했던 자리는 아니었지만 더 큰 위로와 힘을 전해줄 수 없다는 점이 미안했다. 원래 근무날이 아님에도 내 연락 때문에 볼일이 있다며 회사로 들어와줬다는 걸 알아차려서 더 그랬다. 이왕 발걸음을 한 만큼 풍성한 걸 얻어갈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선배가 후배의 밥과 커피를 무조건 사주는 문화가 이 업계에 정착했나보다. 이날 회의 전 가졌던 점심식사에서 먹고 싶은 걸 다 시키라던 선배처럼 말이다. 힘들고 고민스럽다는 걸 이미 경험한 선배들은 별다른 타개법을 전해주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듣고 "나도 그랬다"며 맞장구를 칠 뿐이다. 그러면서 뭘 먹고 싶냐고 묻는 게 전부다. 찔러서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이자들이 택한 공감과 위로의 가장 지혜로운 방법인 것이다. 지나보면 별것아닌 걸 알게 되고 고민한 만큼 좋은 돌파구를 마련하리라 후배를 믿으면서.


취재가 밀려 더 이상 시간을 낼 수 없어 후배를 배웅하며 내가 한 말도 똑같았다. 꼭 회사 근처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득 모인 장소여도 좋으니 아주 비싸고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얼굴에 고민이 가득한 채 회사 문을 나서는 후배 모습을 보니 학부시절 내가 떠올랐다. 막막한 미래를 두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긴 한숨이 이어졌던 시절이었는데 벌써 수년이 흘렀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잘 헤쳐왔구나 감사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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