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l Feb 22. 2023

또 쥘려고 하기 보다는

꽂히면 당장 실행에 옮기는 성격은 일 뿐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Paul 제공

요즘 자동차 매물 사이트에 들어가 그랜저를 검색하고 있다. 아버지가 이미 해당 차종을 타고 다니시기 때문에 내게는 아주 먼 미래에 고려할 만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를 통해 출고 브이로그를 즐겨보다가 이 차에 꽂히게 됐다. 지금 나온 GN7은 너무 미래지향적이라 나와 맞지 않았고 바로 전 버전인 더 뉴 그랜저가 눈에 들어왔다. 이리저리 차량만 살펴보다 어느새 견적을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차를 구매한 건 지난 2021년이다. 이전부터 구매하고 싶었지만 돈도 없었을 뿐더러 부모님을 납득시킬 수 있는 명분이 부족했다. 그러다 해당 년도에 이직을 하게 되면서 드디어 구매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당직을 하면 자정 무렵쯤 끝났는데 대중교통을 타면 새벽 1시를 꼬박 넘겨 도착해야 했다. 반면 차량을 이용하면 40분 안쪽으로 끊을 수 있으니 어떻게 생각해보나 가장 합리적인 건 차를 구매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첫 차는 아무렇게나 굴릴 수 있는 것이면서도 연비가 잘 나오는 종류여야 했다. 당시엔 러시아가 미치지 않았을 때라 디젤 가격이 휘발유보다 월등히 합리적이었다. 이 조건에 부합하면서도 젊은 직장인의 국룰이라고 여겨지는 코나를 중고로 구매하게 됐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연비는 평균 24km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났을 무렵 주행거리가 9만km를 넘게 되니 잔고장이 잇따르면서 차를 바꿔야 하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었다.


사실 고장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좀 더 큰 차량을 타보면 좋겠다는 내 마음이 우선적인 고려대상으로 작용했다. 기간을 두고 고려할 만한 차량을 살펴본 건 아니었지만 꽂히면 하는 성격인 나는 일단 매장을 방문했다. 이때가 첫 차를 구매한 지 1년이 되는 시기였다. 견물생심이라고 소형 SUV만 타던 내에게 세단은 참 멋있어 보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다음 어떤 결말이 발생했는지는 잘 알 것이다.


디젤을 타다가 휘발유로 넘어온 운전자는 공감할 것이다. 마치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캔슬링을 처음 경험한 그런 느낌 말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잘 운행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그랜저가 내 마음을 강타한 것이다. 딱히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고 심심한 마음에 여러 출고 브이로그를 찾아본 것 뿐인데. 요즘 주차장이나 거리에서 그랜저만 보인다는 사실을 숨기진 않겠다.


오늘도 운동을 하기 위해 아파트 피트니스센터로 향하는 길에 주차된 그랜저들을 쓱 보며 걸었다. 그리고 지하주차장 출구를 나서자마자 따뜻한 햇빛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봄이 다가왔다는 걸 새삼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다. 문득 이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음에 감사했다. 동시에 이미 쥐고 있는 게 많음에도 또 다른 걸 얻기 위해 분주히 셈을 해봤던 내 자신이 떠올랐다.


이를테면 그랜저를 검색했던 게 그랬다.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쥐면 행복한 것이고 반대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게 아닌데. 어디 강연을 가서도 훈수랍시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은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운동을 가는 짧은 시간에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후 땀을 잔뜩 흘리며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친 뒤 나갈 준비를 하면서 음악을 듣는 게 어찌나 즐겁던지.


오늘처럼 집에서 밖으로 나서며 마시는 공기를 두고 종종 드는 생각이 있다. 어딘가에 매몰돼 있으면 이같은 상쾌함을 누려볼 기회가 적어진다는 점이다. 어제와 오늘이 눈을 씻고 아무리 비벼봐도 달라진 것을 찾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갖가지 사물로 이뤄진 세상은 변하는 성질이 없어 그 모습 그대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 마음가짐이 다르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하루를 더 다채롭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데 대단한 결심은 둘째치고 감사 한스푼 먼저 얹어보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평생 이어졌으면 했던 점심식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