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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n 04. 2023

기꺼이 내어주며 나선다는 건

꿈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 과제를 하던 대학시절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Paul 제공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지난 5월 모교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특강을 맡아줄 수 없냐는 연락이었다. 내 글을 계속 읽어왔던 독자들이라면 이같은 일화를 수차례 반복해 큰 흥미가 없을 것이다. 이번엔 좀 다른 이야기니 끝까지 읽어보길 첫째 문단에 밝힌다. 어쨌든 감사한 기회가 다시 찾아왔으니 때마침 비어있던 일정에 맞춰 수락을 했다.


구체적인 일정과 내용 조율을 위해 다시 회신을 받기로 했는데 원래 약속됐던 날보다 하루가 지나 연락이 왔다. 학생들이 언론제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1회 특강 말고 한달에 한번씩 멘토링을 해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적지만 사업비를 편성해 얼마의 금액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교수님은 덧붙이셨다. 약 반년 동안 시간으로 환산하면 사실 적은 규모이긴 했다. 그렇지만 나는 수락을 했다.


내가 수락을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꿈을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나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섭외를 위한 교수님의 한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하고 있다. 지난 특강 때를 떠올려보면 후배들은 나의 쓸모없는 농담도 눈빛을 반짝이며 노트북과 아이패드에 메모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나 싶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시간과 어떤 형태로의 재능을 사용하는 건 쉽지 않다. 말로는 그러고 싶다며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지만 실제 그런 기회가 오면 망설여지는 게 당연하다. 무얼 건네면 반드시 돌아오는 합당한 댓가를 받아내야 하는 오늘날이지 않나.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응할 수 있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접해왔던 가정교육을 넘어선 어떤 방향성을 추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방향성이란 이렇다. 돈 한푼이 아쉬웠던 어학연수 시절 취재팀을 만들어 활동할 당시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선 팀을 소개할 명함이 필요했다. 명함을 만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조그마한 종이를 인쇄하려면 적잖은 돈이 든다. 당시 나와 함께 활동을 했던 디자이너는 아주 멋진 명함을 디자인해 인쇄를 본인 사비로 전부 결제하곤 했다. 내가 얼마냐고 물으면 늘 "뭘~"이란 답만 내놨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섬김을 보여준 것이다.


기껏해봐야 몇만원 남짓이겠으나 누군가의 필요를 기꺼이 채워줄 용기는 규모를 떠나 어렵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아무리 계산해도 남는 장사가 아닌데 각박한 세상 속 어쩌면 물정 모르는 바보를 자처하는 꼴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이같은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상황과 공동체 가운데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나의 부족함을 채워준 이들 덕분에 원하는 꿈으로 전진 가능했다.


앞서 언급했던 특강과 멘토링 등의 제안이 오면 감사를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족한 나를 믿어줬다는 뜻이지 않나. 여력이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참석하겠으나 걱정이 뒤따르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들이 꿈을 이뤄가는 데 내가 유익할 수도 혹은 무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20대 초반에 자신의 꿈을 구체화한 후배들의 모습이 어떨까에 대해서 기대가 된다. 절반이 막 지난 서른을 돌아보면 그래도 나쁘지 않게 지나가고 있다 가슴을 쓸어내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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