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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Oct 12. 2023

택시에서 마주쳤던 인생 선배

휴대폰 1개는 내비로, 1개는 유튜브로 사용하신다는 택시기사님. Paul 제공

몇일전 판교역에서 택시를 탄 바 있다. 늘 운전을 하고 다녔는데 딱히 주차를 할 곳이 마땅찮은 이날 일정 여파였다. 해당 지역 직장인들이 야근을 막 끝냈을 무렵이라 좀처럼 택시가 잡히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내리 서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타기는 싫었다. 그냥 기다려보지 싶은 마음이었는데 버튼을 잘못 눌러 일반이 아닌 블루 택시 잡기로 변경되는 바람에 곧바로 배차가 이뤄졌었다.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취재 좀 그만하라고 막아선다. 이 업에 들어선 뒤 무언가 어색한 상황이 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질문 폭격을 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이 꼭 취재하는 것 같단다. 이날도 그랬다. 오랜만에 탄 택시였는데 집까지 거리가 있었고 조용한 분위기를 참지 못해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기사님이 어떻게 택시를 운전하게 됐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택시를 한지 오래됐냐는 질문에 "반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답한 기사님은 "나이가 많이 먹어 받아주는 회사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출판사 영업부터 장사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며 "그러다 안정적인 돈벌이를 위해 취직을 하고 싶었는데 그 생각을 했을 땐 이미 늙어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러다 찾은 게 택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사님은 약 12시간 이상을 운전하신다고 했다. 그는 "6시간도 해보고 10시간도 해보고 다 해봤는데 돈을 벌려면 새벽시간을 껴 12시간 이상을 해야 한다"고 했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엔 "아직은 뿌듯할 때가 많다. 공항에 가는 손님들을 태울 땐 캐리어를 트렁크에 직접 담아주기도 한다. 어쨌든 내 운전으로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차 안에서는 라디오나 트로트가 아닌 감미로운 발라드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취향이 좋으시다고 너스레를 떨자 기사님은 "크루 교육 때 본사에서 이런 노래를 틀어야 손님이 좋아한다고 추천해줬다"고 말했다. 그냥 흘려들을 수 있는 교육이었지만 그것을 실전에 반영한 기사님의 얼굴은 꽤나 생생해보였다. 하루 종일 일에 찌들어 입이 나올 때까지 나온 나와 비교된 모습이었다.


그렇게 30분쯤이 흘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려 차문을 닫고 아파트 입구를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쨌든 사람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따위에 관한 것들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하게 된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많은데 조금의 불평도 참지 못하고 토로하고 있으니 말이다. 첫 감사가 무엇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한 거 보면 영락없는 인간이구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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