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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Oct 26. 2023

길바닥에서 노트북을 펼쳤을 때

퇴근길 직장인들은 하늘이 이뻐도 위를 쳐다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Paul 제공

얼마 전 일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데 한 부처 공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기사에 기재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니 수정해달라는 요구였다. 그 말을 들으며 기사를 다시 살펴봤는데 딱히 수정해야 할 부분을 찾지 못했다. 이 공보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본인들 기준에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단어를 바꿔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보통 이같은 요청을 하는 경우 예의가 장착되기 마련이다. 나에 대한 맹목적인 예의가 아닌 업무 담당자로서 자신이 해결해야 할 사안을 잘 마치기 위한 태도나 자세 따위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보는 '무조건 바꿔달라'는 식의 고압적 말투를 이어갔다. 내 바로 직속 선배들과 데스크도 이런 적이 없는데 말이다. 할 말은 많았지만 나도 똑같이 대응하면 안 됐다. 기자가 이렇게 했다는 뒷말이 무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보고를 하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목적지보다 한참 전에 있는 정류장에 내렸다. 마땅히 노트북을 펼칠 곳이 없어 근처 광장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리고 데스크에게 보고할 내용들을 정리해 전달드렸다. 이후 걸려온 통화에서 어떻게 마무리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협의 끝에 일정 단어를 수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모든 과정은 단 30여분 만에 일어난 것이었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광장 앞에 있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큰 허탈함이 몰려왔다. 내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인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잔뜩 들어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공보의 대응은 대단히 잘못돼 문제를 삼으면 짚고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한들 내 마음이 기뻐지는 것도 아니고 애초 이런 상식을 알리 없는 원인 제공자가 큰 깨달음을 가질 것 같지도 않았다.


문제라면 허탈한 마음이 커져 왜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됐다는 점이었다. 사실 무던해져서 그렇지 기사가 출고되면 내 이름은 물론이고 얼굴이 대문짝만게 담긴 기자페이지를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보게 되는 것 아닌가. 이 사실을 자각하면 꽤나 아찔해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나도 모르는 새 어떤 담당자들에게 오르내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적지 않은 무게가 있는 일이 기자란 걸 새삼 알게 된 이날이였다.


마음의 힘듦이 커졌고 결국 아무도 없는 예배당을 찾게 됐다. 아무도 없지만 더 아무도 볼 수 없는 구석으로 가 앉았다. 이내 벅차오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펑펑 울었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후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니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별다른 해결책을 얻고 예배당을 나온 건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마음의 평온을 찾은 느낌이 들긴 했다. 무리없이 잘 나아간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힘들어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착각이란 포장지에 덮여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웃프게도 이날 저녁 기획 취재 관련 연락을 선배로부터 받은 뒤 참여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새벽 댓바람부터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며 취재를 했었다. N년차 직장인이라면 으레 겪고 있는 오늘날 같은 것일까. 최근 식사 자리에서 만난 국장은 일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는데 어떤 생각과 결심이 스쳐갔는지 취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낸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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