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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Jul 08. 2024

그럴 권리가 우리에겐 없는데

현장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알려줬던 안내 문구. Paul 제공

얼마 전 큰 사건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런 사건들이 발생하면 빠지지 않고 가야하는 장소가 바로 장례식장이다. 사건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들어봐야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억울함을 전해듣기 위해서가 아닌 보도할 수 있는 이슈가 있는지 챙겨보는 것이다. 이건 언론사들 사이에서 불변의 법칙처럼 여겨지고 있다.


보통 이런 취재는 막내급 기자들이 가기 마련이지만 큰 사건들의 경우 연차에 상관없이 장례식장으로 배정된다. 하루가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바쁜데 그런 세세함을 따질 여력이 어딨겠는가. 그냥 전날밤이나 당일 새벽에 "어디로 가라"하면 가는 거다. 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내게도 그런 지시가 주어졌고 아침 7시쯤까지 어느 장례식장으로 가게 됐다.


꼭두새벽부터 택시를 타고 갔기에 장례식장엔 아무도 없을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타사 기자들이 장례식장 로비에 줄지어 앉아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근처에서 숙박을 한 뒤 곧장 출근을 한듯 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약 1시간 가량이 지나자 누가봐도 기자인 것 같은 사람들이 계속 로비로 들어왔다. 어느새 노트북을 펼쳐 화가난 것 마냥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30명이 넘게 모인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오전 9시가 지났을 때 본격적인 상황이 시작됐다. 유족들이 모여들었고 부검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장례는 언제 치뤄지게 되는지 등 숱한 논의가 오갔다. 그 가운데 기자들은 혹시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을 전해들으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참 웃지 못할 상황들을 목격하게 됐다.


가령 이런 거다. 유족 1명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혹은 장례식장 직원이 이동을 하기 위해 움직이면 당시 장례식장에 있었던 모든 기자가 따라 붙었다. 어떤 기자들은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가기도 했다. 유족들이 부검과 관련해 경찰에 항의할 땐 그 주위를 에워싸고 나눠지는 말들을 놓치지 않고 담으려고 했다.


특히 어린 유족들 손에 명함을 전달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혹시나 유족들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받지 않을까 싶어 하는 행동들이었다. 어린 유족들은 미성년자였다. 아무리 우리 일을 한다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반대 입장이라면 도대체 이 직업을 갖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그 순간엔 모두가 그걸 망각한 채 혈안이 되어 있는 듯 했다.


하루를 마치고 선후배들과 저녁을 같이 하며 이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는 주어진 일을 하는 거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들 말이다. 우리에겐 그들의 삶에 마음대로 들어가 헤집어놓을 권한이 없는데 마치 그래도 되는 것 마냥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뉴스가 싫어진 탓에 더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이런 취재를 할 때 "먼저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란 말을 꺼내는 내 자신이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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