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패드를 새로 사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애플펜슬이 필요없게 됐다. 살 당시 부푼 꿈을 가지고 산 것이었는데. 막상 사두고 나니 별로 쓸모가 없는 것 아니겠는가. 매번 충전만 해두는 게 아까웠는데 새로운 아이패드와 규격이 맞지 않는다는 명분이 있어 산지 약 4년 만에 팔 수 있게 됐다.
중고 거래는 기세라고 내가 방문하는 모든 동네마다 글을 올렸다. 크게 3곳이었는데, 내가 사는 동네와 사무실이 있는 지역 그리고 일을 하러 자주 가는 동네에 글을 올렸다. 혹시나 연락이 오면 곧바로 팔아야 하니 출근할 때 애플펜슬을 가방에 넣어두고 다녔다. 글을 잇따라 올리고 난 뒤 기다렸는데 하루 동안은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오늘 펜슬을 사겠다는 연락이 마구 쏟아졌다.
매우 적극적으로 구매를 희망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시간과 약속을 정하면서 내게 가격을 저렴하게 줄 수 없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구매한지 오래되긴 했지만 거의 새것과 다름 없는 상품이고 나름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해 올려두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퍽 좋지 않은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지만 나도 바로 팔고 싶은 마음에 오늘 바로 구매한다면 그가 원하는 할인폭의 절반 정도를 깎아주겠다 말했다.
순조롭게 약속을 잡고난 뒤 퇴근하고 만나기로 했다. 퇴근 후 급하게 약속장소로 나가니 그제서야 한참 더 걸릴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이게 뭔가 싶었지만 빨리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이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거래를 하러 나가게 됐다.
거래 장소로 나가니 웬 어린 얼굴의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쭈뼛거리며 상품을 살펴보더니 이내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다. 오지랖이 번져 학생이냐고 물으니 대학생이라고 했다. 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내가 짐작한 게 아닐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예측할 수 없던 것도 대중교통 때문이었을 거고 내게 몇번이나 가격을 좀 더 내려달라 말한 게 소중한 돈을 모아 원하는 걸 구매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당시에 뭐가 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 학생에게 “원래 원하던 가격에 주겠다”는 말을 했다. 학생 얼굴은 이내 화색이 돌았고 거래를 마쳤다.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잘했나 수없이 생각했다. 단돈 1만원이라도, 내가 아무리 직장인이라도 큰 돈 아닌가. 그순간 내가 왜 그랬을까 곱씹었다. 늘 내가 가진 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달라 기도했는데 어쩌다보니 실천을 하게 된 거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행동이 먼저 나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짐작한 게 맞을 수도 혹은 틀릴 수도 있다. 학생은 횡재했다며 다음에 비슷한 거래를 할 때 최대한 내게 보여준 이미지를 활용해야겠다 다짐했을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했으니 그것으로 원하는 공부에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목적한 삶을 살아나간다면 내가 깎아준 몇푼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넉넉해진 마음을 갖고 평온한 밤을 보내야겠다.